새 정부의 인권의지를 보여줄 첫 양심수 석방이 이 달 말 단행된다고 한다. 언론 보도대로라면 1,418명의 시국․공안사범이 사면․복권돼 외형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특사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45명 '양심수' 가운데 기결수로만 한정해 고작 13명을 내보내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 각계가 나서서 해결을 요구한 176명에 달하는 한총련 수배자들에 대한 수배해제 조치는 제외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1천명이 넘는 병역거부 양심수의 가석방 문제는 아예 고려 대상에서조차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사면은 결코 정권의 선심 베풀기가 아니다. 사면은 정치적 반대세력, 정권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과감한 관용을 통해 민주사회를 지향할 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정의'와 '현실의 법'이 충돌해 빚어낸 양심수를 사면하는 것은 반인권적 법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인권단체들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우선적으로 양심수의 전원 석방을 요구하여 왔던 것이고, 그를 통해 정부의 인권개선 의지를 가늠하고는 했다.
이 점에 비추어볼 때, 이번에 단행되는 첫 특사 방침은 권위주의 시대의 악법과 관행이 지속되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특사 방침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 발전의 걸림돌인 수구․공안세력과의 타협 끝에 선택된 '악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수구․공안의 권력구조를 개혁하리라는 믿음으로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의 염원을 저버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 정부가 역대 대통령처럼 개혁의 변죽만 울리다가 임기를 마치는 닮은 길을 걸어가리라는 예상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양심수에 대한 사면․복권 조치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양심의 자유를 억압해온 국가보안법과 생존권 투쟁마저도 불법시하는 각종 노동법의 개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할 대체복무제의 도입 등 인권적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새 정부가 최소한 1년6개월 이상을 복역한 병역거부 양심수와 미결수들을 포함한 양심수 석방, 전면적 수배해제 등의 조치를 취하길 요구한다. 그것만이 개혁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수구․공안세력의 저항과 공격을 물리치고 민주와 인권 개혁의 길을 열어제치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수구․공안세력과의 타협으로는 국민적 지지만 잃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