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 따른 울분으로 자살한 듯…징벌제도 대대적 정비 시급
징벌을 부과받은 재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해 4월과 5월 부산교도소와 대전교도소에 각각 수감 중이던 재소자들이 과도한 징벌에 항의해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1년 만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그 충격이 더욱 크다.
재소자 징벌 받다 스스로 목 매
사건은 1일 새벽 안동교도소에서 발생했다. 30일 소란, 자해 등의 이유로 징벌위원회에서 2개월 간의 금치 징벌을 부과받은 서모(37) 씨가 다음날인 1일 새벽 3시경 징벌방에서 내의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한 것. 3시 40분경 시찰을 돌던 교도관이 서 씨를 발견했을 때 서 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사인은 질식사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안동교도소측은 "모든 사실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검찰 조사로 밝혀질 것"이라며 징벌 및 관련 의혹에 대해 자세한 답변을 회피했다.
서 씨의 갑작스런 죽음에 유족들은 망연자실한 상태다. 서 씨의 형은 "며칠 전까지 만 해도 안경을 바꿀 수 있게 영치금을 보내달라고 했다"며 "모든 게 꿈만 같다.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징벌에 따른 울분으로 자살한 듯
서 씨가 징벌방에서 자살하자, 29일 면전 진정 조사차 서 씨를 면담한 바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시급히 조사에 착수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수명 조사관은 "29일 면담은 서 씨가 서신문제와 관련해 교도관과의 다툼을 해결해 달라고 진정해옴에 따라 이뤄졌으며, 이는 30일 징벌이 부과된 건과는 별개의 사건"이라고 밝혔다.
진 조사관은 "29일 서 씨를 면담했던 조사관으로부터 면담 당시 서 씨의 표정이 매우 밝았으며, 다음날 열릴 징벌위원회의 결정에 대해서도 이미 예견하고 있는 상태였다고 전해들었다"며 "몇 가지 의혹은 있지만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서 씨의 자살은 순간적인 울분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망하기 보름 전쯤 교도관과의 다툼이 있자 철문을 머리로 들이받고 자해를 시도한 사실과 서 씨와 함께 생활한 동료 재소자의 증언을 취합해 볼 때 자살의 징후 등이 엿보였다는 것이다.
과도하고 부당한 징벌, 자살 부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사실이라면, 문제의 핵심은 '징벌'에 있다. 우선 자살, 자해 등의 우려가 있는 재소자에게 징벌을 부과하는 것이 문제다. 이상희 변호사는 "재소자의 경우 미래에 대한 절망감, 교도소 및 동료와의 부적응, 사회로부터의 고립감 등으로 일반인보다 더 많은 자해 또는 자살의 충동을 느낀다"며 "자살 또는 자해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 징벌처분을 하는 것은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징벌과정의 불공정성과 불복제도의 미비다. 규정상 징벌을 부과하기 위해서는 징벌위원회 회장인 교도소장이 징벌위원회를 개최, 혐의가 있는 재소자의 소명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징벌이 소측 혹은 교도관과의 마찰과 대립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징벌위원회의 공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재소자의 소명 절차 역시 '출석'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또한 이러한 징벌 결정에 대해 재심을 요구하거나 불복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가 없어 징벌 결정에 대한 재소자의 반발은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징벌요건의 모호성과 징벌의 내용, 징벌 결정 시 부과되는 과도한 기본권 제한도 큰 문제다. 징벌 규정이 매우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교도관들의 자의적이고 과도한 집행상의 남용이 가능할 뿐 아니라, 징벌의 90%이상은 금치 징벌이 부과된다. 금치 징벌을 받게 되면 징벌방에 수감돼 서신, 접견 등 외부와의 교통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물론 독서, 운동, 작업 등의 일상생활 역시 모두 금지된다. 천주교인권위 김덕진 간사는 "비좁고 열악한 징벌실 구조와 극단적인 기본권 제한 등이 맞물려져 재소자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가중시킨다"며 "금치는 감옥 안의 감옥으로 불릴 만큼 고통스런 징벌"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 개선책 마련 기대
제2, 제 3의 서 씨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징벌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절실하지만, 아직까지 법무부는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조만간 국가인권위원회가 징벌제도에 관한 개선책을 마련, 법무부에 정책권고할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