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지난해 5월 청송제2교도소에서 연속 징벌을 받다 자살한 고모 씨 관련 진정사건에서, '연속 징벌 집행시 정신과 진료를 거치도록 관련 규정의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당시 기자는 인권위의 결정에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관련기사 본지 2003년 2월 21일자> 하지만 이후 연속 징벌 문제와 관련한 인권위 내부의 논의 역사와 기사작성 당시 미완성 상태여서 공개되지 않았던 결정문 전문을 접하면서 인권위에 대한 끔찍한 절망감과 분노를 느껴야했다.
'아시아법률자원센터'(ALRC)가 2002년 12월 발행한 <Article 2> 1권 6호에는 지난달 인권위원직을 사임한 곽노현 교수(방송대 법학)가 쓴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 1년의 평가"라는 글이 실려있다. 이 글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이미 인권위 내부에서는 연속 징벌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당시 인권위원이었던 곽교수는 청송교도소를 방문조사 하는 과정에서 0.9평도 채 못되는 징벌방에서 몇개월째 갇혀있던 여러 재소자들을 만났다. 이에 곽교수는 상임위원회에 △전국 교도소의 2개월 이상 연속 징벌자 명단을 입수하고 △이들의 남은 징벌기간의 면제를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하며 △이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상태 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한편, △당시 6개월이상 연속 징벌을 받다 몸무게가 12kg이나 빠진 한 재소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김창국 인권위원장은 '연속 징벌은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으며, 개별 징벌이 합법적이라면 연속 집행은 문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곽교수의 요청을 거부했고, 여기에 유현, 박경서 상임위원도 동조했다. 긴급구제 요청 역시 거부됐다. 2개월 이상 연속되는 징벌이 '인권의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현행법'에 저촉되는지 여부가 판단의 근거가 된 셈이다.
이것이 지난해 2월의 일이다. 그런데 지난번 결정에서 다루어진 고모 씨의 자살사건이 발생한 것이 같은 해 5월, 그리고 현재 인권위에는 같은 시기 부산교도소 징벌방에 3개월째 갇혀있다 자살한 배모 씨 사건이 진정되어 있다. 만약 지난해 2월 인권위가 곽교수의 주장대로 연속 징벌 관행을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들의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게다. 곽교수는 "두 사건을 접하고선 마치 내가 그들을 죽인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또 이들 알려진 죽음 이외에도 연속 징벌 과정에서 발생한 더 많은 죽음들이 있었을 수 있다. 아니, 지금도 구금시설내 징벌방에는 몇개월째 고립된 상태에서 자살로 내몰리고 정신이 기거할 곳을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이번 결정에서 태평스레 관련 규정의 개정을 권고했을 뿐, 연속 징벌로 고통받고 있는 재소자들을 당장에 구제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내놓지 않았다. 이번 결정이 진정이 제기된 지 9개월 후에야 나왔다는 사실 역시 인권위가 연속 징벌의 위험성에 대해 얼마나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게다가 인권위는 위 결정문에서 "10여개월의 연속적인 징벌, 과도한 계구사용…등은 정신질환이 있는 피해자에게 견디기 힘든 가혹한 행위가 되었을 것"이며, "과도한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심각한 연속징벌의 집행은 가능한 한 제한적으로 실시되어야 하고 최소한 그 집행 전에 그 대상자가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정신상태에 있는지 전문가에 의한 엄정한 검증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그럴 듯한 말들은 '미치지 않은 재소자는 2개월 넘게 징벌방에 갇혀 있어도 문제될 게 없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정신과 진료가 얼마나 엄정히 실시될지, 얼마 만에 끝날지도 의문이다.
인권위가 이렇듯 안이한 자세로 연속 징벌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동안, 징벌방 내에서는 살릴 수도 있는 목숨들이 사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