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삶 사실적으로 재현…인권영화제 개막작 선정
인권영화제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영화제의 첫 날밤 스크린을 밝혀줄 개막작은 홍기선 감독의 영화 <선택>이다. 지난 95년 45년만에 출옥한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씨의 삶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홍 감독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다. 80년대 대학시절부터 영화운동을 주도해 온 홍 감독은 독립영화제작집단인 장산곶매에서 <닫힌 교문을 열며>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메가폰을 잡은 첫 영화는 92년, 현대판 노예선이라고 불리는 멍텅구리배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이다.
그 후 영화 <선택>이 나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인권영화제의 관객으로 자주 얼굴을 보이기도 한 그는 97년 이미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투자자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소재가 너무 "빨갛다"라는 이유로 충무로의 제작사들로부터 퇴짜를 맞기 일쑤였던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은 그 자체가 투쟁이었다. 장선우, 박광수 등 상업영화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 '80년대 새로운 영화 운동의 기수'들 가운데 오직 홍기선 감독만이 영화운동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았고 그 결실이 바로 <선택>이 됐다.
주인공인 김선명 씨는 인민군으로 유엔군에 생포돼 복역하다 53년 간첩혐의가 추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무기수로 감형돼 평생을 갇혀 살아온 그는 남한정권이 저지른 야만을 전 세계에 고발한 양심수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었다. 영화는 45년 감옥살이 중에서 특히 1970년대 극악했던 전향공작에 초점을 맞춘다. 살인적인 고문과 가족을 동원한 회유에 무릎을 꿇고 김선명의 동지들은 하나 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전향 각서'라는 종이 한 장과 맞바꾼다. 김선명을 비롯한 양심수들이 견뎌야 했던 이 고통은 바깥 세상은 모르게 치러야 했던 '보이지 않는 전쟁'이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카메라는 철저히 차단된 감옥 안의 삶을 냉정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일 없이 '사실'을 '사실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한 인간의 고결한 영혼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