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전 날 발표된 ‘장기수 옥사 사건과 관련한 의문사위 결정’에 대한 중앙일보 기사(7월 2일자)로 의문사위는 장장 15일에 걸쳐 홍역을 치러야 했다. 의문사위 흔들기는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이어진 조사관 전력시비 마무리 한판까지. 지금은 의문사위 3차 개정입법마저 매우 불안한 상황이 돼버렸다. 중앙일보가 장기수 옥사 사건을 ‘키우며’ 한 건을 준비하던 시간, 인권하루소식이 맘 편히 한상범 위원장을 만난 것은 의문사의 결정이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 한계라면 한계.
‘아’와 ‘어’의 왜곡
의문사위가 1일 결정한 것은 옥사한 장기수 3인이 민주화 운동과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위법한 공권력에 맞서 단식을 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강제급식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의문사위의 결정은 ‘양심을 지키고자 한 그들의 행동을 사상전향제도 폐지, 준법서약서 폐지 등 이후 우리사회가 민주화되는데 기여한 점을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언론의 보도는 ‘간첩, 빨치산 출신’에 방점을 찍고 장기수들이 ‘북한체제수호 행위를 했는데도 민주인사라고 한다’라고 펄펄 뛰었다. 중앙일보 2일자 사설을 보면,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남파간첩과 빨치산 활동을 한 이들에게서 대한민국의 국법을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민주화에 걸림돌이라도 되었냐’라고 묻고 있다. 풀어 써서 ‘국법준수 약속’이지 이것은 분명 전향공작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문이나 폭력 등의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한 죽음은 잘못된 것이지만, 사상전향제도나 준법서약서 그게 뭐가 잘못됐냐고 묻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헌법을 인용해 사상?양심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말한다. 사상?양심을 억압해 온 전향제도나 준법서약서의 반인권성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양심의 자유를 거론하는 것은 대체 어느 나라 문법인가.
의문사위가 ‘간첩과 빨치산을 민주인사로 인정했다’고 거품 문 것도 마찬가지이다. 의문사위가 언제 민주인사라고 했나? 위법한 공권력에 저항한 그들의 죽음이 오늘날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첩과 빨치산 운운하는데, 의문사위가 결정한 것은 전향공작에 저항한 이들의 행위이지, 간첩행위나 빨치산 행위가 아니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고문?폭행 등 위법한 전향공작에 저항하다 사망한 장기수의 죽음을 민주화 기여로 인정했다’를 ‘남파간첩, 빨치산의 전향거부를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라고 보도하는 것은 왜곡이다.
의문사위, 수난시대
이어진 의문사위 조사관들의 전력시비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사면?복권됐고, 검찰 등 관련기관의 신원조회와 검증을 거친 지 오래다. 이미 1기 의문사위 시절 해명된 일이기도 하고 중앙일보에서 2002년도에 기사화했던 것인데, 마치 새로운 사실을 보도하듯 한 이들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다. ‘의문사위 죽이기’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의문사위의 수난은 이뿐이 아니다. 의문사위는 지난 2월에 발생한 총기발사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다. 어떻게 군 수사관이 의문사위 조사관에게 총기를 발사할 수 있는가? 군인이고, 총을 가지고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태도가 아닌가. 이처럼 경악스런 상황에서 의문사위와 국방부의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다른 다수의 사건처럼 허원근 사망 사건도 의문사위가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군이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총기를 발사한 인모 수사관이 올 5월에 의문사위에 제공한 자료만으로도(사망원인을 밝히는 결정적인 자료는 아님, 그러나) 국방부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가 드러났다. 국방부 특조단이 1기 의문사위에 퍼부었던 ‘허위 날조 조사’라는 모욕은 고스란히 국방부 특조단이 돌려받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인모 수사관은 의문사위 조사관이 자신의 집에서 자료를 가져가면서, ‘자신의 부인에게 폭행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의 녹취 자료가 공개되면서 허위 주장이 돼 버렸다.
국방부(특조단)가 엉터리 조사결과와 총기발사, 허위주장으로 막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 ‘의문사위 조사관이 군 수사관을 회유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다. 의문사위 조사관이 현 정권의 실세를 거론하면서 회유했다며 녹취 ‘전문’이라는 것이 연합뉴스 ‘특종’으로 뜬 것이다. 그 ‘특종’에 어리둥절, 아니 가슴이 철렁했다. 솔직히 보도 이후 오후까지 혼미한 상태로 있다가(-.-;), ‘녹취를 공개하라’는 의문사위의 보도자료를 보고 인권하루소식에서는 연합뉴스에 확인 전화를 했다.
연합뉴스 기자는 녹취를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녹취를 푼) 문서만 받았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녹음을 듣지도 않고 녹취록 전문이라고 기사를 올렸다는 말이다. 기자의 양심을 탓하기보다, 정말이지 별 해괴한 음해세력도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사진상규명법이 3차 개정을 앞둔 시점에서 이러한 보도의 저의가 너무나 의심스러울 뿐이다. 한상범 위원장은 ‘국회가 의문사위에는 찌께칼 한 자루 쥐어 주고 청룡도를 휘두르는 자와 맞서라고 한 셈’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 찌께칼로 헤쳐 나가야 할 의문사위의 길은 난관 투성이다.
1일 인터뷰에서 의문사위 한상범 위원장은 “(의문사위) 들어와 일해 보니 개혁반대 세력이 엄청 세다. 개혁의 타깃이 되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훼방은 조직적인데, 개혁으로 돌파해야 할 세력은 막연하고 순진하고 어찌 보면 바보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개혁은 투쟁이고, 막연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의 반발과 훼방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최근 의문사위 기사는 도무지 거리유지가 안되고, 평상심을 갖기가 어렵다. 특종? 인터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