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 법원에 가면 진실도 허위사실?
인터뷰 중인 이길준. 그는 촛불집회 진압당시 “내 인간성이 하얗게 타버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용산에서 경찰의 무모한 진압으로 벌어진 참사 탓에 온 나라가 충격에 빠진 시점에 이런 판결이 나왔다는게 기가 막힐 뿐이다. 판사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재판부는 이길준이 언론에서 ‘보이지 않게 때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인터뷰한 것에 대해 "허위 사실을 언론에 유포한 것은 공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으로 1심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의 무모한 강경진압으로 철거민들과 경찰이 죽은 이 마당에, 어느 누가 공권력 행사에 대해 신뢰하겠는가? 이길준이 알려주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거리에서, 동네에서 스스로 국민과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경찰들을 직접 보았다. 여대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고,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고, 사람을 향해 직접 물대포를 쏘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큰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고도 무리하게 ‘대테러작전’을 펼치고, 자신의 부하들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조차 진압명령을 내리고도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경찰이다. 재판부가 말한 ‘공권력에 대한 신뢰 훼손’은 과연 누가 한 것인가?
양심에 더 많은 형량을 부과하는 재판부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 같은 것은 애시당초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서, 국가가 저지른 공권력 남용에 대한 반성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입으로만 법치를 외치는 게 아닌, 내부에서 들리는 경고와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척이라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헛된 기대였다. 무너져버린 믿음 앞에서 자신도 같은 인간임을 알리며 부당한 명령에 저항했던 이길준은 본보기 식으로 더 많은 형량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만약, 경찰이 이길준의 고민과 행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경찰들 개개인이 폭력의 도구이기 이전에, 같은 인간으로서 자신이 하려고 하는 행동을 돌아봤다면 어땠을까. 위계질서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고 위협이 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보복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불복종을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21세기 도로 한복판 빌딩에서 사람들이 불타 죽는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
지금은 국민의 의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반대방향으로 불도저식 정치를 자행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 표현마저도 어려운 현실이다. 사소한 표현으로도 구속되고, 집회와 시위도 구속과 벌금폭탄을 각오해야 한다. 빈곤층은 더욱 빈곤해지더라도 저항하지 말고 소수자는 더 탄압을 받더라도 그저 조용히 견디라고 폭력의 체제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시기일수록 내가 내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없는 조건들에 대해 “이건 아니야, 잘못 됐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야말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소중한 권리이지 않을까.
덧붙임
여옥님은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