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인권은 무관심에서 출발한다
연예인의 인권은 인권이 아니다. 오직 사람들의 가십거리일 뿐이고, 독자나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어내려는 황색 언론의 소재거리일 뿐이다. 오랫동안 폭력으로 고통받아온 여성 연예인의 이야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얼마 전, 3년 동안 한 남자로부터 온갖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던 게그우먼 이 아무개 씨의 사건을 맡았다. 가해자는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고, 사업자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으며, 심지어 양주잔으로 이씨의 얼굴을 찍어 상처를 입혔다. 이씨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담당 피디에게 이씨가 포르노 배우라는 거짓말을 하며 출연시키지 말라는 요구까지 했다. 그는 폭력 남성의 전형으로서 진즉 처벌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법에 호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자신의 사생활이 황색 언론에 까발려지고, 연예인으로서의 생명도 끝장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씨는 끝내 참지 못하고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그녀가 우려했던 일들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가해자가 3년 동안 '어떻게' 이씨에게 폭행하고 괴롭혔는지가 사건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황색 언론은 가해자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집요한 관심을 보였다. 가해자가 연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애정다툼으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의도에서 "동거했던 사이다", "아직도 사랑한다"라는 말을 떠들어대자, 황색언론은 사실이야 어찌됐던 가해자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냄으로써 무료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냈다. 사람들이 호기심거리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쑥덕이는 동안 이 여성의 인권은 계속 짓밟혀왔던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피해를 당한 여성 연예인들은 2중, 3중으로 인권침해를 당하는 셈이다. 1차적으로 가해자의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고, 2차적으로 황색 언론으로부터 사생활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당하며, 대중의 경박한 호기심에 의해서 다시 한번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여주는 황색 언론의 태도는 여성연예인이 인권침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구조를 더욱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지금도 자신처럼 오랫동안 남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동료연예인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여기서 어설프게 이들의 인권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단지 이들의 사생활에 관심갖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이들의 인권은 거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칠준 님은 다산인권센터 운영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