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약관에 쟁의행위 금지 조항 둬…관련 법제도 개선 뒤따라야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광고로 유명한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그간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제한하는 약관을 둬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 기본권을 제한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그간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제시해 온 '협력작업 계약 일반 약관'을 보면, 하청업체는 "노사간의 쟁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노사분규 등 내부사정으로 인하여 작업에 차질이 예상되면 도급인이 직접 수행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작업을 수행"(제19조 쟁위행위 금지 등)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 약관에서는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사유로 "노동쟁의 발생"(제28조 계약해지 등 제재)을 명시해 두고 있기도 하다.
민주노총 금속연맹 산하 금속산업노동조합(아래 금속노조)은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이러한 약관을 악용해 하청업체의 노조활동을 탄압해 왔다고 주장한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2001년 하청업체인 삼화산업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삼화산업 사측은 작업의 일부를 자진 반납하겠다고 요청했고 포스코측은 이를 수락했다. 더 나아가 포스코측은 삼화산업에 공문을 보내 쟁의행위가 중단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협박했고, 삼화산업은 이를 빌미로 노조에 다시 이 공문을 보내 계약이 해지될지 모르니 빨리 회사를 정상화시키라고 위협했다.
2003년 2월 설립된 태금산업지회에서도 똑같은 수법이 사용됐다는 것이 금속노조의 설명이다. 교섭을 회피하던 사측에 맞서 지난 5월 28일 조합이 태업에 돌입하자, 사측이 이틀 후에 작업을 포스코에 반납했고, 이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는 것. 태금산업지회 허형길 지회장은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는데도 전체 직원 160명 중 50여명의 비조합원들은 제철소 안에서 여전히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사측은 위장폐업을 즉각 중단하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하라"고 주장했다.
각계의 비판이 빗발치자, 포스코측은 지난달 19일 약관 19조를 삭제하고 28조를 "협력사의 귀책사유로 인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로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화산업지회 정용식 수석부지회장은 "약관 변경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말한다. 파업 등 노조 활동 자체가 귀책사유로 취급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 수석부지회장은 "포스코측은 그동안 저질러온 불법에 대해 사과하고, 협력업체의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관에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이러한 포스코측의 '은밀한 노조 탄압'에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서상범 변호사는 "이런 경우 포스코가 실제 사용 사업주이지만, 현행법상 사업주는 아니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로 규정받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윤애림 정책국장은 "사용 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들이 사용자로서 전면적인 책임을 지도록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