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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 비정규 노동자와 복수노조 제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제약하는 강제적 창구단일화제도

작년 7월부터 복수노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법제도의 시행은 우리 헌법에 모든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에 모순되는 두 가지의 변화를 가져왔다. 일단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기업별 복수노조) 설립 제한이 없어지면서 단결권이 확대되게 되었다. 다른 한편 복수의 노조들이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지만 사용자에게 교섭의무가 발생하게 되는 강제적인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시행되게 되어 오히려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과 행동권이 제한되게 되었다.

기업별 노사관계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항상 위협받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비정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상시적인 고용불안 속에 고통 받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워낙 구조화된 열악함에 놓이다보니 부당한 사용자의 권력행사에 저항하기보다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거나, 또는 새로운 직장(역시 불안정한 노동을 하는 직장)으로 옮기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즉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현재의 일자리는 사용자에 맞서 싸워가면서 지키고 싶은 좋은 일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정규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조합 활동과 투쟁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이런 과정을 겪으며 더욱 열악해진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 노동법이 있으나 법률로 정한 노동조건은 최저기준에 불과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최저 수준 근처에서 정확히 맞추어진다. 간혹 비정규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부당함에 맞서 노동조합을 만들면, 사용자는 어김없이 재계약 거부, 계약해지 등의 방법으로 조합원들을 위협하여 탈퇴를 강요하고, 탄압을 통해서도 노조 약화가 쉽지 않으면 아예 통째로 업체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집단적으로 해고한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서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으나 비정규 노동자에게 법은 너무나 멀고 사용자의 권력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다. 그래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더라도 사용자에게 지배되지 않는 자주적인 조직으로서 생존하고 유지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된다.

현행 노조법은 교섭단위를 기본적으로 기업으로 한정해

또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개별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하청 사용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원청 사용자에 의하여 결정되며, 원청의 계약조건은 시장에 형성된 해당 업종, 산업의 최저임금 수준에 의하여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 노조가 기업별로 조직될 때 사용자의 탄압에 맞서 자주적인 노조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많은 산업별 연맹들은 산업별 노조로의 조직전환과 비정규직 조직화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의 경우에도 홍익대, 연세대 등 대학 청소노동자들을 산별노조로 조직하여 2011년 집단교섭 및 투쟁을 진행하였고 해고노동자들의 복직과 최초로 최저임금을 뛰어넘는 임금인상이라는 성과를 낸 바 있다. 그런데 현행법은 교섭단위를 사업장 단위로 한정하고 있고 초기업 노조에 대하여도 사업장 단위의 창구단일화를 강제하고 있어 기업의 벽을 넘는 노동조합 조직이나 초기업별 교섭을 사실상 불가능하도록 막고 있다.

복잡한 창구단일화 절차, 비정규 노동자 법률 전문가가 되어야 하나?

새로운 법에 의해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전에 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되어야 한다. 어떤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면(①최초교섭요구), 사용자는 이를 7일간 사업장에 공고하고 교섭에 참가할 노조의 신청을 받고(②교섭요구사실공고 및 참가노조 신청), 5일간 다시 교섭요구 노조의 현황을 공고하며(③참가노조 공고), 14일간 참가노조들 간에 자율적인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치고(④자율적 단일화 절차), 조합원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5일간 과반수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공고하여 확정되는 절차(⑤과반수노조의 교섭대표노조 확정공고)를 거쳐야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되고 단체교섭이 시작될 수 있다.(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그 외에도 공동교섭대표단 구성 등으로 더 많은 시간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진다) 즉 아무런 문제없이 창구단일화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빨라야 31일의 기간이 지나야만 단체교섭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노조나 사측의 각종 이의제기가 있거나, 사용자의 개입이 있거나, 교섭단위 분리신청이 있거나, 또는 조합원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최초 교섭요구일로부터 2개월 이상이 지나도록 교섭조차도 시작하지 못할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 절차에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사용자와 그렇지 못한 비정규 노동자들 간의 교섭력 차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소수노조나 신규노조에는 단체교섭권/쟁의권 보장 안 돼

강제적인 창구단일화 제도에 의하여 조합원수에 따라서 다수파 노조는 교섭권과 쟁의권을 대표로 행사하게 되는 반면, 소수파 노조는 사실상 교섭권과 쟁의권을 행사할 수 없고 다수파인 교섭대표노조가 자신들을 공정하게 대표하기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노동법상 각종의 차별금지제도(부당노동행위제도, 남녀차별금지제도, 비정규차별금지제도 등)가 있지만, 현실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차별시정제도는 전혀 차별시정의 효과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수파 노조가 소수파 노조를 공정하게 대표할 공정대표의무제도 역시 실효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이후에 만들어진 신규노조는 교섭권이 보장되지 않고 공정대표의무제도의 적용도 받지 못한다. 비정규직이 사업장내에서 일반적으로 소수인 경우가 많고, 다행히 다수파라고 하더라도 대단히 취약한 현실을 감안할 때 사용자의 탄압이 있을 경우 언제라도 소수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조합원이 소수라는 이유로 또는 신규노조라는 이유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사용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싫어하는 노조를 소수파로 만들기 위하여 어용노조를 새롭게 만들거나, 또는 민주적 노조를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없는 공정대표의무제도나 부당노동행위제도와 같은 사후적 구제제도가 아니라, 조합원 수에 관계없이 비록 소수의 노동조합이라도 직접 교섭하고 자신이 책임지고 투쟁할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부족하나마 보호될 수 있을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제약하는 강제적 창구단일화제도

파견, 용역회사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창구단일화제도의 문제점이 더욱 심각하다. 현실에서 파견, 용역회사들은 원청회사와의 노무공급계약에 의하여 임금과 4대 보험 등을 관리해주는 원청의 인사노무관리 대행업체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노사관계는 원청 사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한편 용역회사는 전국에 수십 수백 개의 노무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는데, 만약 용역회사를 기준으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로서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다른 사업장의 노조와 창구단일화를 해야 되는 이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렵게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을 시작하더라도 용역업체가 변경되게 된다면 그때부터 다시 새롭게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용역업체를 기준으로 한 창구단일화 제도로 인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1년 내내 창구단일화 절차만 진행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노동조합에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해야

이상과 같은 이유로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3권은 새롭게 바뀐 강제적 창구단일화제도로 인해 더욱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2011년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아름다운 연대가 이루어졌던 홍익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에서 사용자측이 주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복수노조가 등장하여 조합원 탈퇴압력 행사 등 노조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홍익대의 한 용역업체는 새롭게 만들어진 복수노조와 이미 단체협약을 체결하였으니 공공운수노조와는 교섭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단체교섭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홍익대 해당 업체의 교섭거부에 대하여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최근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하니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을 명령하면서 위반시 1일당 1백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행한 바 있다.

복수노조제도를 악용(어용노조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약화, 창구단일화절차를 이유로 한 민주노조와의 교섭거부, 어용노조 중심의 단체교섭 진행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현상은 대학의 청소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에게도, 서비스 노동자에게도, 제조업 노동자에게도,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사업장에도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노동부와 노동위원회)는 강제적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어떠한 예외도 없이 모든 사업장에 강제하고 있다. 어용복수노조 설립을 통한 민주노조 탄압이 ‘사용자에 의한 탄압’이라고 한다면, 기업단위로 교섭을 강제하고 소수노조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법제도에 의한 민주노조 탄압’이고 ‘사용자에 의한 탄압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제도’이다. 가뜩이나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기업을 넘어서는 산업별, 지역별 교섭구조를 법․제도화하고, 강제적 창구단일화 제도가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에 교섭권과 쟁의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노조법 개정과 법률해석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사진: 2011년 3.8 여성의 날 청소노동자 파업 지지 기자회견]

▲ [사진: 2011년 3.8 여성의 날 청소노동자 파업 지지 기자회견]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집단 교섭의 의미

지금 대학의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하여 생활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중이다. 고려대, 경희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등의 청소, 경비 및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2011년 교섭의 성과로 체결된 단체협약에 근거하여 다수의 용역업체들과 집단적으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 대학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단교섭 결렬시 돌입할 쟁의행위에 대하여 노동위원회와 노동부가 어떤 해석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가 내세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정책구호에 일말의 진실성이 있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부정하고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정부가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용자들조차 인정하여 참가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집단교섭’을 창구단일화 제도의 예외로 인정하고 노동행정기관의 본연의 역할인 노동분쟁 해결을 위한 적극적 조정자로 나서야 할 것이다.
덧붙임

배동산 님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정책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