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로 인한 노동권 박탈과 단속추방으로 고통받고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노동부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번 노조 결성을 통해 인종차별, 노예노동과 다름없는 노동권 침해, 심지어 성폭력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반면, 노동부에서는 노조설립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은 민주노총 영등포 사무실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아노아르 위원장은 "얼굴색이 다르고 언어와 종교가 다를지라도 우리는 한국노동자들과 똑같은 노동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법이 무시되는 사각지대에서 뿌리깊은 인권유린, 고질적인 임금체불, 산재은폐와 미보상의 고통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극도의 저임금, 장시간노동, 심지어 감금노동은 (이주노동자들을) 필연적으로 공장에서 이탈하게 했고 불법체류자 신세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24일 노조 창립총회를 개최한 이주노동자들은 "(지난해와 올해) 380일간의 농성투쟁을 벌였던 정신을 계승하고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였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 자리에 함께 한 권영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 설립의 합법성에 대한 의견서>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자성 △'노동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 △이주노동자와 노동3권의 문제를 검토했다. 근로기준법 제5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대법원의 판례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또한 근로기준법 상의 노동자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7.8.26. 선고 97다 18875 판결). 대법원은 또한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중인 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그(노조)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대법원 2004.2.27. 선고 2001두 8568 판결) 이는 이주노동자가 국적이 다르고 불법체류인데다가 실업 상태라고 하더라도 노조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헌법 제6조 제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그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해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3년 7월 1일 발효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해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제26조에서 '노동조합 및 자신들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및 기타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률에 따라 설립된 기타의 조직의 집회와 활동에 참가할 권리'와 '노동조합 및 위에 지적된 조직에 자유로이 가입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조합에 불법체류자가 많고 정치적인 설립 목적이 강할 때는 신고증을 내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 "인종차별 아니냐"는 등의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 후 이주노동자들을 대신해 권 변호사가 노동부에 이주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추방의 위협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신고서를 제출하러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기자회견장 밖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정부기관 마크와 함께 '개인용도로 사용금지'라는 글씨가 새겨진 카메라를 든 신원불명의 사람이 기자회견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으로 평소에 알고 있던 사람"이라며 "이와 같은 불법사찰과 관련해 출입국관리사무소 소장에게 반드시 사과를 받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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