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7일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조 설립필증 촉구를 위한 농성투쟁'에 돌입했다. 이주노조 창립 10년, 그리고 대법원에 의해 이주노조 설립신고 반려는 부당하다는 승소 판결을 받은 지 1달만의 일이다.
지난 2015년 6월 25일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2005년 6월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이주노동자의 노조설립을 인정하라"며 낸 노동조합 설립 신고서 반려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타인과의 상호종속관계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고,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한, 그러한 근로자가 외국인지 여부나 취업자격의 유무에 따라 노종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는 없다…같은 취지에서 원심은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도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이 허용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피고가 이와 다른 전제에서 단지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자격 유무만을 확인할 목적으로 조합원 명부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가 그 보완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대법원은 판결은 지난 10년간 끌어온 이주노조의 합법화에 대한 종결이었다. 하지만 판결 이후 1달이 지났지만, 그 결과는 이주노조 설립필증 촉구를 위한 이주노동자의 농성이었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주노조 설립 투쟁은 여전히 싸워야만 한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안중에도 없는 노동부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재판을 통해 10년 동안 끌어왔던 이주노조의 노조필증 교부를 다시 한 번 거부했다. 노동부는 노동법 제2조 제4호 '마목'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경우 노동조합 결격사유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 이유를 들었다. 이주노조 규약에 있는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연수제도 폐지 등이 노조법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주노조가 논의와 임시총회를 통해 수정된 규약을 제출했지만, 여전히 노동부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주노조 임시총회에 대한 재적조합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 또는 열람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노동허가제 쟁취'가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대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활동임으로 수정을 하라 요구 했다.
노동부의 태도는 단 하나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주노조의 설립을 지연하고 막겠다." 조합원을 확인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내린 판결은 가볍게 무시하고 정부 노동정책에 반대 하는 활동은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안중에도 없는 노동부이다. 그리고 이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 노동조합에 대한 편협한 이해로부터 힘을 받아 이주노조를 고립시키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노조에게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한국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2조 제4호는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자체만으로 너무 방대해지기 때문에 이를 논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에 대한 활동이 비(非)정치적일 수 있을까? 경제와 정치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회, 자본주의 체제와 자유민주주의가 결합되어 있는 사회에서 정치 혹은 정치적 행위가 빠진 채 이와 같은 목적은 달성될 수 없다. 간단히 예를 들면, 전체노동시장의 임금체제가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단일한 사업장에서 임금이 인상되는 것은 한계적이고, 또한 임금이 인상된다고 해서 그들이 가지는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사회적 지위는 둘이 함께 움직여야 하며, 이와 같은 과정에서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가 분리될 수 없다. 즉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변화를 원하는 순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노조가 정치적 요구를 할 경우 이는 쉽게 공격받아 왔다. 오직 파업을 사업자와의 단체협약이 가능한 영역으로 제한해온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노동자의 행동을 국한시켰다. 또한 집권세력은 노조가 한미FTA, 광우병사태와 같은 사회 문제에 입장을 밝히고 싸우면, 이를 자신들의 이득을 지키기 위한 정치활동으로 성격을 곡해시키며 노조의 정치활동은 마치 공공의 이해관계에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지키려는 활동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정치활동은 곧 이익활동으로 곡해되었고, 노조의 정치적 발언과 정치성은 문제적이라는 뜻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당연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목적, 규약은 노동자들이 놓인 현실을 변화하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곧 정치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획득하는 과정이 정치운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이유로 노조 설립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노조에게 노조다움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이주노조의 목적은 이주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이다.
이주노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노동부가 문제 삼는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노동허가제 쟁취'는 한국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고용허가제)이 제정되기 전까지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유입했다. 이와 같은 산업연수생 제도는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민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마음대로 노동을 강요하도록 했다. 현대판 노예제도속에 많은 이주민은 사업장에서 도망을 쳤고, 결국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2003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되어 한시적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숫자가 줄었지만 고용허가제의 문제 속에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와 같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체류자격의 영향으로 인권침해를 비롯한 보호의 사각지대로 내몰렸다. 체류자격이 안정적이지 않기에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와 같은 상황에서도 쉽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출입국관리소의 폭력적 단속 또한 존재했다. 매년 정부는 합동단속을 비롯해 강력한 단속정책을 펼쳤고, 폭력적 단속에 의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부상을 입고 존엄성을 위협 당했다.
고용허가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업주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진 단기순환정책으로 도입한 고용허가제는 사업장변경제한, 업종 제한 등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를 압도적인 약자로 만들었다. 사업장변경 횟수가 제한된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노동조건, 임금체불등의 상황이 발생해도 쉽게 대처할 수 없다. 자신과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도 정부가 정하는 규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참고 일해야 했다. 갑을관계의 힘이 사업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업종 제한 또한 마찬가지이다. 농축산업·어업 전반에서 이주노동자의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하지만, 업종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은 조금 더 문제가 심하지 않는 사업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이 또한 사업장변경 횟수 제한 때문에 쉽지도 않다. 열악한 사업장에서 도망친 이주노동자가 선택할 유일한 통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이주노조가 제출한 규약은 이와 같이 이주노동자를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제도를 바꾸겠다는 요구이다. 이주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건, 이주노조의 당연한 목표이자 역할이다. 그것이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에 노조의 목표에서 빼야 한다는 것은 노조에게 정부에 복종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정부가 의도하는 것
아마도 정부는 이주노조가 제출한 노조설립신고서를 어떠한 이유로도 계속 반려할 것이다. 신고제인 노조 설립이 허가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똑같이 신고제인 집회가 경찰에 의해 허가제로 운영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정부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언제나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탕으로 이들을 고립시킬 것이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 신고를 받지 않은 후, 이를 불법·폭력 집회로 몰아간 정부의 전략은 고스란히 사회에 녹아들었다. 이주노조에 대해서도 정부는 마찬가지로 대응할 것이다. 벌써부터 다음 아고라에는 이주노조를 허가하지 말라는 서명이 진행 중이고, 정부는 이와 같은 여론이 확산되도록 할 것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잠재적 범죄자이며 이들이 가입한 노조가 우리네 삶을 위협할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또한 이주노조 결성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여론을 만들 수도 있다. 이주노조의 목적이 정부정책에 반대를 위함이라 이야기 하며, 외부에서 들어온 타인(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바꾸려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에서 이주노조가 외부에서 들어온 타자라는 점을 강조할 것은 뻔하다.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 들어온 ‘타인’이 동화되지 않고 혼란을 조장한다고 여론이 형성되는 순간 이주노조는 공공의 영역에 침범한 외부 집단화 되며, 내상을 입을 것이다.
이주노조 설립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
한국사회에서 이주민은 우리와 같은 장소, 함께 거주하고 노동하는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한국이라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존재로 불렸고 쉽게 분리되었다. 다문화 거리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거리가 아닌, 다른 나라의 문화와 음식 사람들이 있는 곳이 되었다.
공공의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 중 이주노동자 문제는 단지 그들만의 문제로 멈추었다. 그렇기에 공공의 장에 이주노동자는 초대되지 못했다. 연민과 동정에 멈추었고, 권리를 외치거나 저항을 외치면 공공의 장에 침입하는 외부인으로 인식되었다.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노동정책으로 활용하려는 한국사회의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내 일자리를 빼앗는 이주노동자 혹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자기나라로 가져가는 외부인이라는 시선만 남았다.
운동은 어땠을까? 이주노동자 문제를 전 세계적 문제로 이해하고, 구호적으로는 이주노동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 운동의 영역에서 이주노동 문제는 여전히 그들의 문제였다. 도리어 이주노동자가 내국인 노동자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다. 운동사회 공공의 장에서도 여전히 이주노동자 문제는 밀려나 있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공공의 장, 정치의 장소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한국사회 문제에 어디 즈음 위치에 있고, 그것이 다른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끊임없이 사회에 제기해야 한다. 또한 이주노동자를 ‘타자’의 자리에서 끌어 내려와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타자’의 자리에 있는 한 마치 국민을 위협하는 외부인으로 언제든 다시 몰릴 수 있다. 우리와 함께 거주하고 노동하는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운동사회는 이들을 공동체에서 밀어내려는 힘에 함께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이 이주노조 설립투쟁에 우리가 가져야할 책임이자 연대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