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병원을 향한 투쟁
"완쾌된다 해도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다." 무슨 이야기인지 의아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완쾌됐는데, 병원에 돌아가야 하다니? 이것은 병원에서 일하다 병에 걸리고 만 청구성심병원(서울 은평구 소재, 이사장 김학중) 노동자들 이야기다. 얼마 전 한 사회단체 활동가가 전화를 해,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노조원 19명 중 10명이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적응장애', '수면장애' 등의 정신질환 판정을 받았고, 그 중 9명이 산재 요양을 신청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정신질환 판정을 받은 것도 기가 찬데, 그 이유가 노조 활동에 대한 오랜 탄압 때문이란 설명을 들으니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청구성심병원의 노조 탄압이 큰 말썽을 빚으며 사회적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의 일이었다. 당시 병원 쪽은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노조원들에게 똥물을 퍼붓고 집단 폭행을 가했다. 노사정위원회의 중재 아래 병원 쪽은 폭력 책임자를 처벌하고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기로 약속했으나, 약속 이행은커녕 그 해 말 도리어 10명의 노조원들이 해고를 당했다. 그 후 조합원에 대한 감시와 괴롭힘은 일상이 되었고, 그 고통에 숱한 조합원들이 노조 탈퇴는 물론 심지어 병원까지 그만 두었다.
이제 남은 조합원은 19명. 이들이 조합원이란 이유로 당한 차별과 탄압의 목록은 길고도 길다. 편파적으로 승진 대상에서 배제당하고, 일방적인 배치에 빈번하게 부서를 이동해야 했다. 노조 활동은 일상적으로 CCTV를 통해 감시당했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원우회도 가입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고, 병원 쪽의 이간질에 관리자와 비조합원들로부터 따돌림에, 욕설까지 듣곤 했다. 사람들은 이럴 때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합원들 여럿은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는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무엇이 이렇게 병원을 비인간적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일단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 관리자들이 병원 일에서 손을 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에는 민간 병원의 상업성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지역주민의 건강보다는 수익에 눈 먼 병원 입장에서, 병원 운영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노조는 눈엣가시로 보일 뿐이다. 병원이 개인의 재산인 양 독단적 운영을 고집할 때, 인간적 병원이란 기대하기 힘들다. 비영리 법인인 민간병원들을 공적으로 지원하고 민주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하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주민들, 환자들의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병원, 일하는 사람들이 환자의 치료와 요양에 전념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청구성심병원의 조합원들도 이러한 것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지금 9명의 조합원들은 병가 중이다. 이들은 상태가 좋아져도 병원에 돌아가는 것이 무섭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어서 건강 회복하세요. 감시와 탄압 속에서 지켜온 여러분들의 투쟁이 '인간적인 병원'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기운 내세요."
(이주영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