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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방사능 피해 유전, 드러나는 증거들

방사능 피해의 유전성은 최근까지는 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지는 못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직후 피폭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던 미국의 건강영향조사 결과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고, 그렇다고 다른 요인을 배제한 채 인간을 상대로 추가 실험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대전 중 핵실험과 방사능무기의 저장·장착 등의 과정에서 피폭된 미군이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들, 86년 체르노빌 발전소 폭파사건의 피해자들의 2세들 가운데 선천성 기형이나 면역 결핍, 호르몬 이상 등의 치명적인 질병이 발견되면서 방사능 피해의 유전성에 대한 의혹은 계속 제기돼 왔다. 특히 3백톤이 넘는 열화우라늄탄이 실전에서 사용됐던 91년 걸프전의 참전군인들과 그 자녀들에게서 발견된 '걸프전 증후군'(Gulf War Syndrome)은 이러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많은 과학자들도 방사능으로 유전변이가 생겨 기형아가 발생하고, 염색체가 변형돼 발암율이 높이지며, 방사능이 골수에 자리잡아 백혈병 등의 혈액질환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설명을 제시해 왔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해 5월 영국 리체스터대학과 미국 국립생물학실험실의 생화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강한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돌연변이가 3대까지 유전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에 발표해 큰 충격을 줬다. 당시 연구팀은 높은 강도의 방사선을 쪼인 수컷 쥐들을 정상적인 암컷 쥐와 교배한 결과 3세대에 걸쳐 정상보다 높은 비율로 DNA 돌연변이가 발생했음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의 리처드 새틀로 수석연구원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돌연변이는 쥐의 경우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암이나 신경계 교란 같은 질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해 원폭후유증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