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노인들의 울부짖음, 불타는 삶의 터전들, 파괴되는 공동체, 살인적 구타, 폭격과 총살, 성폭행, 집단 학살... 공포...
51년 전 제주에서 벌어졌던 태워 죽이고, 굶겨 죽이고, 없애 죽이는 이른바 삼진(三盡)작전이 지금 유럽 한복판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작전의 조종자는 여전히 미국이며, 작전 목적 역시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국익에 있다.
나토의 유고 공습을 전후하여 미국은 전쟁의 목적이 도덕과 정의, 인도주의에 있다고 선전했다. 도덕과 정의를 위해서 사람을 죽인다? 인도주의 실현을 위해 전쟁을 한다? 전쟁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킨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해괴한 말들이, 미국의 패권을 등에 업고 마치 나토 공습의 진실인 양 호도되고 있다.
클린턴은 유고 공습이 인종청소를 막아내기 위한 도덕적 명령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간 침묵으로 동조했던 수많은 내전과 국지전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진정 '인도적 개입'이라면 개입하는 쪽의 선의가 구체적 행동으로 충분히 전달되어야 한다. 국제법과 유엔헌장까지 어겨가며 일으킨 군사행동이니 더욱 그러하다.
보스니아, 동티모르, 르완다, 터키 등에서 자행된 학살과 강간, 인종청소에 대해 나 몰라라 냉소주의로 일관했던 미국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도덕과 정의 운운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미국은 분쟁지역마다 자국의 국익을 그 나라 사람들의 인권이 아닌 경제의 관점에서 정의하고 선택적으로 개입했음을 먼저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순서다.
코소보 분쟁을 놓고 나토가 주권국가의 내전에 개입할 수 있느냐, 유엔 절차를 무시한 무력 사용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과 독재자 밀로세비치의 인종말살을 방관해서는 안되므로 공습은 정당하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나는 두 가지 논쟁에 앞서 '밀로세비치가 내세우는 민족주의'와 '코소보의 자치 혹은 독립'이 평화 속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는 얼마나 노력했는지, 전쟁 예방을 위해 어떤 외교와 협상을 벌였는지 먼저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전쟁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이것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분쟁 지역마다 강대국의 이해를 앞세운 무력 개입은 허용될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른 피해자는 속출하게 될 것이다.
인권의 수호는 무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적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토의 공습은 '달러의 공습'이라 할 정도로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고 있고 공습으로 인한 유고의 시설 파괴와 무기 손실등은 아예 계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난민들의 고통과 인명 피해는 무엇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이 돈을 신유고연방의 평화 기금으로 모아 공존을 위한 논의와 연구를 지속했다면 우리는 미래의 역사에서 조금은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토의 대장인 미국은 상식적인 방식을 철저히 무시해 왔고, 오히려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양산하고 있다. 갈등의 뿌리는 그대로 둔 채 힘으로 결론지으려는 태도는 현재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코소보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웨슬리 클라크 나토군 사령관은 공습과 더불어 세르비아계가 알바니아계에 대한 테러를 본격화한 것에 대해 "완전히 예측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즉 미국은 나토 공습이 세르비아계의 만행을 가속화시킨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하면서도 그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애초부터 인권의 관점에서 출발한 개입이 아니므로 수십만 난민들의 절규는 미국 패권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정에 따라붙는 부산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결정적 펀치가 없었다"며 더 많은 인명 피해를 낳게 될 장기전을 예고하였고, 미 의회 역시 코소보 내전과 미국 국익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논쟁이 모아지고 있다. '결정적 펀치'로 인해 사람이 상하는 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1950년 대만에서 '붉은 분자 숙청'이라는 백색테러가 감행될 당시 '백명을 잘못 구속하는 일이 있더라도 잡아야 할 한 명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구호가 난무했다.
미국의 유럽 지배전략의 하나로 나토가 퍼붓는 미사일 공격은 바로 대만 테러분자의 모습이 아닐까? 인종청소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더욱 커다란 폭력을 부추기는 것은 그 어떤 수사로도 용서될 수 없는 범죄행위이다. 밀로세비치의 만행은 다른 방식을 통해서 풀어야만 했다. 방법은 분명 있었다.
분단의 고통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미국에 경도된 반쪽짜리 사고는 분단이 내린 최고의 형벌이라는 생각이 더욱 깊어지는 요즘이다. 유고 공습과 코소보 난민들의 희생에 아무런 대응도 취하지 못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정유진(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 1343호
- 정유진
- 199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