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가? 국민들인가, 너희들 자신인가? 이제 허구적 논리와 외교적 수사에 가득찬 WTO농업 협상은 그만하라. 농업을 WTO체제에서 제외시켜라." 지난 3월 제네바 WTO 정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전개하며 외쳤던 고 이경해 씨의 목소리가 지금 이 땅 400만 농민들의 뜨거운 투쟁의 함성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19일 늦은 6시 광화문 네거리에서는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고 이경해 열사 추모대회'가 열렸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WTO반대'와 '열사정신계승'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농민과 시민 1000여명은 손에 촛불을 받쳐든 채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장례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서정의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WTO 협상은 힘겹고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전세계 농민들의 생존권을 말살하려 드는 행위"라며 목숨을 바쳐 WTO 협상을 저지한 이 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 송남수 회장은 "농업은 돈벌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한 생명과 관련된 문제"라며, WTO체제하에서 자행되는 농업 개방 압력의 부당성을 성토하였다.
이밖에도 민중연대 정광훈, 오종렬 상임대표와 환경운동연합 최열 공동대표 등도 조사를 통해 WTO체제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농민, 노동자, 빈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자본의 에이전트" 노릇을 하고 있는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며 고인의 의지를 계승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고인의 큰딸 이보람 씨는 "아버지께서는 한 그루의 성냥이 되고자 한다고 유언을 남기셨다"며 "아버지의 죽음이 정말로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 뒤 끝내 오열했다.
추모대회에 참석한 전농 충남도연맹 박성만 부의장은 "칸쿤현장에서 가장 열심히 싸운 것은 한국 농민들이었다. 5차 각료회의를 막아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다"며 앞으로 닥쳐올 제6차 WTO협상 또한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 다짐하였다. 한국농업전문학교에 다니는 김규동 씨는 "우리 학생들 또한 고인의 뜻을 이어 투쟁들을 계속 전개해 나갈 것"이란 결의를 내보였다.
전국빈민연합 최오수 조직국장은 "영결식이 끝나고 열사를 떠나보냈다고 해서 이 싸움이 매듭지어져서는 안 된다"며 "민중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할복을 해야만 하는 이 비참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전 민중들이 함께 연대하는 강력한 투쟁들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이경해 씨의 유해는 20일 오전 9시 발인되어 10시경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문 앞에서 영결식을 가진 뒤 장지(전북 장수)로 옮겨지며, 당일 오후 4시경 장수군청 앞에서의 노제 후 하관될 예정이다. 또 전국민중연대 등 각계 사회단체들이 주최하는 '故 이경해 열사 추모 및 이라크파병 반대 결의대회'가 20일 오후 1시 30분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개최된다.
한편, 19일 오후 6시경 경북 성주군 농민단체가 주최한 '고 이경해 열사 추모 촛불집회' 도중 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을 시도했던 박동호(34, 농민) 씨는 현재 화기로 인해 내부 장기가 손상돼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하우스 참외농사로 생계를 꾸려왔던 박 씨의 분신 시도는 농민들의 가슴을 또 한번 찢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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