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걸까
사실 한국에서 학생들, 청소년들은 많은 부분에서 인권을 제한받고 있다. 정치활동은 물론이고 자치활동조차 통제되고 있고 자신의 머리와 옷 입는 방식까지 규제받고 있다. 한국에서 학생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인정되지 않는 ‘예외적’ 인간으로 오직 ‘학업-학습노동’에만 12년간 얽매여 있도록 되어 있다. ‘학습하는 기계’로 규정된 청소년들의 자유로운 활동과 의사표현이 ‘학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제약받는 게 당연시 될 정도로 학생들은 사회의 약자다. 약자들이 가장 먼저 촛불집회에 참여해 잘못된 정부의 무역정책에 반대하고 나섰다는 점이 정말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1960년 4∙19때 중학생, 고등학생이 가장 먼저 나서서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거리에서 이승만 정권을 끌어내린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걸까. 87년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던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까닭은 그들의 정치적 요구가 시민들의 보편적인 요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게다.
보수언론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학생들의 심리는 일명 오빠부대와 비슷하다’며 사회심리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먹이고 청소년의 정치의식을 비하하는 보도로 일관해도 청소년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또한 교육청이 촛불 집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해당 학교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현장에 나간 교사에게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보고할 것을 지시하는 등의 직접적인 통제를 하여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선생들의 농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정치적 의사표현 자유 보장이 민주주의의 길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의 자유는 ‘미숙하다’거나 ‘공부가 우선이다’라는 논리로 제한된다. 그래서 집회에 나선 학생의 피켓에는 “엄마 죄송해요. 하지만 죽을 수는 없잖아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공부 외에 다른 활동을 하는 게 부모에게 죄스럽도록 교육받은 결과 나온 문구이지만 의사표현은 분명하고 절실하다.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을 심의하며, 18세 이하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의사결정 과정과 정치적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를 개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정치활동의 자유는 물론 학생회 등의 자치활동조차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공직자 선거법은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명시적으로 제한하고 처벌할 수 있는 등 청소년의 시민권은 철저히 박탈되었다.
4∙19때 중학생을 비롯한 청소년들의 앞장선 활동이 지식인 집단인 교수 등의 어른들을 일으켜 세웠듯이 7일 집회에서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함께 했다. 13일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금까지의 촛불 문화제는 명백히 미신고 집회로 불법인 만큼 주최자에 대해서는 사후 처벌을 분명히 하겠다”고 청소년들을 협박했지만 이제 그렇게 꺼질 불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으며 촛불을 못 들게 하면 시민들은 손전화라도 들 것이다.
정치가 시민의 의사들을 반영하는 공공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미신고 집회이니 사법 처벌하겠다는 경찰청장의 발언은 공포정치의 부활이다. MBC PD수첩을 사법처리하겠다는 청와대의 발언은 언론 길들이기이며 시민의 알 권리를 빼앗는 행위임을 온 시민이 다 알고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시민적 권리의 중요성
인권의 역사를 보면 시민적 권리가 먼저 나섰고 사회적 권리가 이후에 드러났다. 물론 그 이면에는 프랑스대혁명 시기 왕과 귀족들의 권력행사를 제한하기 위해 시민적 권리를 쟁취해야 했던 부르주아들의 이해관계가 있었다. 이후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인권선언을 쓰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존권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사회권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었다. 그 결과 미흡하지만 시민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의존적 권리임을 참여국들은 확인했다.
사회권 일반논평 12 ‘적절한 식량에 관한 권리’는 “개인의 식이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양과 질을 갖추고 있고 해로운 물질이 없으며 해당 문화 내에서 용인될 수 있는 이용가능한 상태”로 식량이 존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식량이 불순물 또는 불량한 환경위생이나 여러 단계의 공급과정 중의 부적절한 취급으로 인하여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식량안보 및 공정한 수단을 통한 일련의 보호 조치에 대한 요건을 정”하여 해로운 물질이 없도록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사회권 일반논평 14 ‘최고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는 “안전하고 마실 수 있는 물과 기본적인 위생의 충분한 공급을 보장할 필요”와 “인간 건강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해로운 기타의 환경 조건 등 유해 물질에 인구가 노출되는 것을 예방하고 축소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 비추어 봐도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시민들의 식량권, 건강권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의무를 저버린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시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침해하는 조치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사회권 침해를 막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여론을 형성할 자유마저 보장되지 않는다면 사회권 침해를 그냥 눈앞에서 보고 있어야만 한다.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 수입으로 시민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위협받는 현실에서 자기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민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잘못된 정책에 대해 비판할 권리, 시민들의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해야만 권력이 없는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을 생산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정치선동을 중단하라”고 하는 한나라당 등이야말로 정파적 이해관계를 갖고 타인의 정치활동을 부정하고 제약하는 ‘불순한 정치적’ 행위이지 않는가.
인권의 정치를 꿈꾸며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는 청소년을 비롯한 시민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다. 시민들이 사회적 권리인 건강권을 되찾기 위해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 이명박 탄핵에 서명한 이들이 100만 명을 넘어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사실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는 새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을 보여준다. 계속 되는 물가상승, 민생보다는 기업과 재벌을 위한 규제 완화정책에 쌓였던 불만이 터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감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얼마 전 정부의 고위 관리와 대화하며 “새 정부 들어 집회시위의 권리를 축소하는 집시법 개악 법안을 법무부가 추진 중인 것을 아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국회에서 처리할 문제이며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 몫”이라고 정색을 하며 논의할 “인권사항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시민의 정치활동은 투표행위만이 전부일 뿐이며 나쁜 대통령을 뽑은 자신을 탓하는 일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인권적 시각과 내용으로 재구성되는 ‘인권의 정치’가 실현되려면 더 많은 시민들의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요구하는 행동을 한다면 인권의 정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껍질’을 벗고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권리가 포함된 정책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청소년들이 앞장선 시민의 건강권 쟁취 싸움이 승리를 거두고, 이어서 청소년들의 정치활동의 권리-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으로 이어지기를.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http://sarangbang.jinbo.net)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