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한미자유무역협정(아래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이후 사회적으로 찬반 논쟁이 불붙었다. 하지만 논쟁의 쟁점은 주로 협상의 경제적 이익과 손실을 따져보는 ‘국익론’에 머물러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철저히 손익 계산을 따져 우리의 이익을 관철했다”고 자평했다. 반면 한미 FTA를 반대하는 측 가운데 다수는 일부 산업이 입는 피해와 다른 산업이 입는 이익을 비교할 때 최악의 협상결과라며 ‘매국적 협정’, ‘망국 협상’으로 규정짓는다. 동시에 득실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협상 결과를 정확히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논쟁은 사실 ‘어느 쪽이 국익에 더 가까운가’를 두고 투쟁하는 형국이다. 노 대통령이 협상 타결 직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반대하신 분들의 주장이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처럼 한미 FTA를 관세인하를 통한 시장개방 정도로 협소하게 바라보면서 피해 산업을 따지는 식으로는 자유무역협정이 불러오는 인권침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인권의 눈으로 볼 때 한미 FTA의 과실은 양국의 독점 자본가들에게 집중되는 반면 그 피해는 양국의 민중에게 전가된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을 평가하는 잣대로 ‘국익’을 들게 되면 인권침해의 피해자는 농업 등 소수의 대표적인 ‘피해 산업’에 종사하는 민중들로 축소된다. 이들은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피해를 당하는 사람으로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될 뿐이다. 따라서 인권의 시선으로 한미 FTA를 보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체제인 한미 FTA가 인권의 증진에 기여하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1966년 유엔이 채택하고 1990년 한국정부도 가입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아래 사회권규약)에 따라 한미 FTA가 초래할 결과에 대해 살펴본다.
인권보장 수준에 대한 고의적인 후퇴 조치
사회권규약은 △노동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교육권 △식량권 △주거권 등 인간답게 살 권리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흔히 인권을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나누고, 자유권은 ‘즉각적인 실현’이 가능한 반면 사회권은 상당한 재정적 지출을 동반하므로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오해가 있다. 이에 따르면 사회권의 보장은 정치적 문제이지, 국가의 법적 의무는 아니다. 이런 접근은 사회권과 관련된 국제인권기준이나 헌법 조항의 효력을 쉽게 부정하고 인권 보장 수준을 정체 혹은 후퇴시켰다.
이런 문제 때문에 사회권규약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규약 가입 국가에 개별 권리 항목에 대한 존중·보호·실현의 의무를 지우는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존중할 의무’는 국가가 개인의 권리 향유를 침해하지 않을 의무를 말한다. 예를 들어 국가가 대안적 주거의 공급 없이 감행하는 강제철거는 주거권 침해를 구성하는 것이다. ‘보호’의 의무는 제3자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의무이다. 사기업에 의한 노동착취나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등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의무가 이에 해당한다. 국제법률가위원회(ICJ) 등은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을 통해 국가가 “사회권을 침해하는 제3자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경우”(14c항)는 물론이고, “사회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 혹은 집단을 규제하지 않은 경우”도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실현할 의무’는 국가가 어떤 개인의 자체 노력으로 보장할 수 없는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할 의무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한미 FTA를 감행한 한국 정부는 사회권규약이 요구하는 국가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 협상을 개시하면서 한국 정부는 이른바 ‘4대 선결조건’ 중 하나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했다. 당시에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농림부는 이 새로운 기준에 따라 수입 검역을 실시하면서 뼛조각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전량 반송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 정부와 협상단은 “광우병 관련 쇠고기 검역조건과 같은 위생검역 현안은 한미 FTA의 협상대상이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5월말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평가등급이 최종 결정되면 ‘뼈 있는 쇠고기’도 수입하기로 구두 약속 후 대국민담화를 통해 발표했다. 유전자 변형 유기체(LMO)의 경우도 섬유 관세철폐와 연계한 이면 합의를 통해 표시제를 완화하는 등 수입 규제를 없애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동차 관세철폐와 연계해 타결된 자동차세 세제 단순화와 배출가스 허용 기준 완화도 대형차 수입 급증과 환경오염 심화를 예고하고 있다.
반면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 14 :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에 대한 권리’에서 “국가가 제3자에 의한 건강권 침해로부터 자국 관할권 내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가의 의무 위반을 다루고 있다. 사회권위원회는 “특히 의업이나 식품의 사용자 및 제조업자에 의한 건강에 해로운 행위로부터의 소비자 및 근로자 보호의 불이행”을 예로 들고 있다.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은 “사회권의 현 보장수준을 감소시키는 고의적인 후퇴조치”(14e항)를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의 진정한 문제는 현재도 미약한 인권보장의 수준을 광범위하게 후퇴시킨다는 점이다. 게다가 인권증진의 의무를 지고 있는 국가가 그 의무를 방기하는 수준을 넘어 고의적인 후퇴조치를 감행한다는 점에서 인권의 주체인 인민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인권 위에 올라 선 재산권
한미 FTA의 투자 부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는 자신의 투자가 해당 국가의 특정 조치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국가를 국제 중재에 회부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국가의 조치에는 정부의 행정 행위뿐만 아니라 입법부의 입법, 사법부의 재판까지도 포함된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부동산과 조세는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성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제도가 국내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는 제도이며, 이를 위해 각종 규제와 제약을 과감히 철폐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한편, 협상 타결 내용에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는 등 창작물의 사회적 이용과 확산보다는 저작권자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여러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의약품 협상에는 특허가 살아 있는 동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해 복제약의 시판을 금지하는 허가-특허 연계 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정부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기조를 유지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설치를 약속한 ‘독립적 이의제기 기구’를 통해 무력화될 전망이어서 약가 인상과 특허 추가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되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산권을 보장하는 제도의 강화가 ‘선진화’라며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사회권규약은 권리의 기본적인 향유를 보장하기 위해 “자국의 가용 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제2조 1항)를 이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히 현재 보유한 자원을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원 배분에 개입함으로써 활용 가능한 자원을 확보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포함된다. 양도세나 재산세 등 세금의 부과를 통해 자원을 확보하고 부의 분배를 재조정하는 조치나 의약품 가격 결정에 개입해 권리 향유의 불평등을 조정하는 조치 또한 국가의 의무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 FTA는 한국 헌법의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과도 배치된다. 정부는 경제에 대한 규제·조정권을 갖고 있는 국가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미 FTA는 ‘균형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기 위해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규제·조정하는 방향이 아니라 시장의 지배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타를 잡고 있다.
경제 체제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
한미 FTA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타결된 협상의 내용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협상의 세부 내용은 현재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정부는 협정문 원문을 국회 비공개자료실에 비치하고 국회 한미 FTA특위 의원들과 1인의 보좌관에 한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도록 제한했다. 애초 메모까지 제한하다가 간단한 메모는 허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 FTA에 의해 권리 박탈을 경험하게 될 사람들이 그 내용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가 공개를 약속한 5월 20일 이후에도 문서로 남아 있지 않을 이면합의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이는 경제 체제를 통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사람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체제를 강요받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구성한다.
특히 대부분의 품목에서 관세가 즉시 철폐되거나 관세 철폐 시점이 정해진 농업의 경우는 심각하다. 노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한미 FTA를 농업 ‘구조조정’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3월 20일 열린 ‘농어업분야 업무보고’에서 노 대통령은 “농업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서 "염치도 없다. (농민은) 한미 FTA 하면 또 돈 내놓으라고 하고, 한중(FTA) 하면 또 내놓으라고 한다"고 농민들을 힐난하기도 했다.
한미 FTA를 통해 이른바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전 산업에서 이런 문제는 공통적으로 발생한다. 협상 타결 다음날인 4월 3일 정부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들이 모인 워크숍에서 노 대통령이 “700명의 어민이 피해를 보는 것을 두고 어떻게 FTA로 어민들의 피해가 엄청나다는 식으로 보고할 수 있냐”고 해양수산부 장관을 질책한 것도 이런 맥락에 서있다. 한편, 한미 FTA 이전에도 지속된 ‘노사관계 로드맵’, ‘비정규노동법 개악’ 등 노동유연화 공세는 한미 FTA의 효과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안착되고 심화될 전망이다. 여기에는 협상의 수혜자로 불리는 자동차산업 부문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회권규약은 “모든 인민은 그들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하고, 또한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발전을 자유로이 추구한다”(제1조 1항)는 자결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국익’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감내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강압은 국제인권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한미 FTA는 6월말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협정 체결과 9월로 예상되는 국회 비준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전례를 볼 때 이미 협상을 마친 협정에 대해 국회가 스스로 비준을 거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익’을 놓고 협상의 성공과 실패를 따지다보면 자유무역협정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전 지구적으로 강화될수록 인권의 증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배제될 것이다. ‘개방’이라는 의제는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들의 발전을 위협하고, 식량주권을 침해하고, 광범위한 실업을 야기하며,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국가에 대해 인권을 증진할 의무를 요구하는 것과 함께 인권을 증진하는 새로운 국제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인권오름 > 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