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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문헌읽기]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최근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싸고 ‘내전’ 비슷한 것이 시작됐다. 입만 열면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던 아이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어른들과 그 어른들의 애독지가 나서서 아이들더러 ‘홍위병’ 운운한다. 사실 홍위병의 뜻이 뭔지 아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 런지도 모르겠다. 중국 역사 운운하며 이 단어의 뜻을 캘 의욕은 없다. 아무튼 그 단어를 아이들을 대상으로 써댄 어른들의 생각은 자신들의 각본에 맞는 아이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럼 소위 ‘홍위병’들의 요구사항을 보자. 함부로 머리 자르지 말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 잡듯 훑어내지 말고, 때리지 말고 모욕 주지 말라고, 갖은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고, 함부로 소지품 뺐지 말고, 억지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붙잡아두지 말라고,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교육 말고 좀 다른 식의 교육을 받게 해달라고, 자신들의 생각에 대해 말할 권리를 달라고 하는 것 등이다. 요즘 아이들 표현대로 하자면 ‘안습’한(슬프고 안타까운) 요구사항들이다.

한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일제고사'에 관해 청소년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 한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일제고사'에 관해 청소년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골랐다. 지금 시기에 꼼꼼히 다시 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전문과 54개조에 이르는 방대한 문헌인지라, 쉽게 고쳐 쓴 것을 골랐다. 누가 쉽게 고쳐 썼냐하면 영국의 9살 아동이 협약을 읽고 자신의 말로 쓴 것을 내가 몸담았던 인권단체에서 교육활동을 위해 번역하고 가다듬은 것이다.



내가 인권운동을 시작하면서 처음 맡은 일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국내에 알리는 일이었다. 1991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한국 정부가 비준했다. 비준한 당사국은 2년 내에 최초보고서를 그 후 5년마다 추가보고서를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이 협약을 비준한 일도 최초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한 일도 당시에 국내에선 전혀 몰랐다. 정부는 입을 다물었고 어떤 언론도 보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가 일하던 인권단체에 편지 한통과 함께 두툼한 영문 자료가 날아들었다. 편지의 요지는 이러했다. 자신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천을 위해 일하는 국제인권단체인데, 얼마 전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에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 한국의 인권단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자료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정부가 얼마나 충실한 보고서를 제출했는지, 즉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국내에서 실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 비판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인권단체의 역할이라는 당부도 함께였다.

그 후 1년여 20여개 인권사회단체 사람들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을 공부했다. 없는 자료를 구해 한자 한자 번역해가며 공부했다. 토론회도 열었고, 협약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의견을 모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민간단체 보고서도 제출했다. 정부대표들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마주하는 회의를 지켜보러, 없는 돈 털어 제네바에도 가야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얘기들을 녹음하여 녹취록도 남기고, 국내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유엔이 내놓은 권고안을 놓고 토론회도 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한 위원이 “한국의 아동에겐 아이일 권리가 없는 것 같다”고 개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1차 보고서 이후 2차 보고서 때도 마찬가지의 일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 학부모, 청소년 등에게 ‘아동 인권’, ‘학생 인권’이라는 말이 퍼져나갔다. 어떻게 하면 협약에 담긴 인권존중의 원칙을 실현할 것인가를 각계에서 고민하게 됐다.

이건 그동안 있어온 수많은 노력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이런 과정을 포함하여 사회각계의 오랜 고민과 실천을 통해 한국 사회에 출현한 과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소년 본인들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활발해진 것이 그 진짜 의미를 살리는 소금구실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갖은 양념과 장식으로 치장한 음식이라도 소금이 없으면 아무 맛도 낼 수 없다. 아동과 청소년의 의견, 관심과 참여야말로 학생인권조례건 무엇이건 이들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일에서 고려돼야 할 필수요소이다. 이게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핵심원칙이다.

사실,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존재를 전혀 모를 때에도, 한국의 청소년들은 여러 방식으로 인간다운 권리를 외쳐왔다. 헌법소원을 시도하기도 하고, pc통신 모임을 통해 두발자유를 위한 모임을 조직하기도 하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학교의 강제 종교 활동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이 불온한 것이라면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불온하다는 것일까? 미성숙해서 위험하다고? 모든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하고 평생 학생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는 언제나 미성숙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감수한다. 실패와 실수를 감수한다. 그리고 또 시도하고 또 나아간다. 아동과 청소년도 마찬가지다. 실패하고 실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가능성을 봉쇄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은 불온한 것을 때려잡는 일이 아니라 불량한 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옳지 못한 것을 그냥 감수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밤 10시까지 혹은 새벽 2시까지 공부만 하라고 학교(학원)에 감금하다시피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원치 않는 종교행사를 강제하는 것이 불량한 것이다. 불량한 것을 바로 잡으면 될 일이지, 강도를 잡지 않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은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독재자는 시민들이 모이고 얘기하는 것을 엄청 두려워한다. 아이들이 모이는 것 자체에 부들부들 경기를 일으키는 어른들은 교육자일까? 존경할 만한 어른일까? 아이들과 인격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일까? 아이들이 모이거나 뭉치거나 의견을 교환하고 표현하는 것, 즉 시민․정치적 권리라는 인권이 호환마마보다 두려운 것은 시민의 권리행사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독재자와 뭐가 다를까? 당신들이 제일 싫어하는 공산주의가 그런 것 때문에 망했다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자유세계는 그런 것을 보장하기 때문에 자유세계라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정치가 그렇게 위험하고 나쁜 것이라면 왜 수많은 어른들은 기를 쓰고 정치를 하려할까, 왜 정치를 위해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대고 볼을 부벼댈까, 그런 여의도 정치 말고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의견을 내고 변화를 가꾸는 것이 진짜 정치라고 여기는 것이 그렇게 무섭나, 그렇게 되면 직업정치인들과 논평가들의 밥그릇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X자 마스크를 씌우려는 것일까?

사실, ‘학생인권조례’에서 논의되는 내용이나 그간 아동․청소년 인권으로 얘기돼온 내용들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과연 우리가 옹호하는 것이 ‘인권’이라 할 만한 수준의 것인가? 때리지 말라는 등등의 요구가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권리’로서 요구될 만한 수준의 내용인가? 고통 받고 학대받는 동물을 구원하자는 얘기 같아서 미안하다. 학대로부터의 자유와 보살핌의 권리를 넘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얘기해야 마땅한 마당에 ‘아동과 청소년은 동물수준을 벗어난 권리를 요구하는 게 사치인가’하는 한숨이 난다. 한 영화 평론가는 한국 영화에서 유괴당하고 살해당하고 중병에 걸리고 학대당하는 어린이 캐릭터의 역할에 대해 “고통에 붙박인 아이들의 캐릭터”라 한적 있다. 현재 아동인권, 학생인권에서 얘기되는 권리항목의 주인공들은 그저 고통에 붙박여 있다.

고통 받는 캐릭터를 벗어나 사회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로 향상시키는데 학생인권조례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상․양심의 자유, 집회의 자유, 학교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 등 유엔아동권리협약의 핵심조항들로 거론되는 것들을 입에 올리기 무섭게 홍위병이란 이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이들을 고통의 캐릭터에 붙잡아 놓는 것이다.

나는 청소년 활동가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우고 의식화된다. ‘나이 어린 애들이….’, ‘대학이나 나온 후에 하면 안 되나’하는 불온한 생각들이 40대 중반이 된 내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오를 때가 솔직히 있다. 그럴 때마다 방글․쌩글․화통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에 내속에 긴 세월 묵혀져온 위계니 뭐니 하는 것들과 현실주의로 둔갑한 배반의식이 뒷구멍을 찾게 된다. 청소년 활동가들은 기존의 틀에 구멍을 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 깁는다고 메워질 구멍이 아니다. 이미 새로 짜여 지고 있고, 실과 직조기를 손에 든 것도 그들이다. 불안한 어른들이 뭐라 하든, 그들은 고통의 캐릭터를 벗어나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고,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1등 독식의 교육문화를 벗어나 공감하고 어우르는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나를 비롯하여 내 주변에는 나이 먹는 게 싫지만 젊어지는 것도 싫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젊은 게 좋아도 학교를 다시 다니기는 싫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런 우리에게 청소년활동가들이 다른 생각을 자극하는 것 같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고, 신나게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쉽게 쓴 유엔아동권리협약

우리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유엔아동권리협약이란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우리의 권리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줍니다. 또 우리가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책임지는 어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다른 아이와 어른들도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협약(조약)이란 같은 법을 지키자는 나라들 사이의 약속입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협약을 ‘비준한다’는 말은 그 협약에 쓰여진 법을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 11월 20일에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정부가 이 협약에 적혀있는 권리를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협약의 각 조항들은 우리의 권리를 하나씩 설명하고 있습니다. 협약은 법률가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어른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조항들을 골라서 쉬운 말로 설명해 보려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 협약의 제 42조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제1조
18세가 되지 않은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 협약에 적혀있는 모든 권리의 주인이다.

제2조
우리가 누구이든지, 우리의 부모님이 누구이든지, 그리고 백인이건 흑인이건 간에, 남자이든 여자이든 간에, 영어를 쓰든지 한국어를 쓰든지 서울말을 쓰든지 사투리를 쓰든지, 무슨 종교를 믿든지, 또한 장애인이건 아니건, 부유하건 가난하건 간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이 협약에 적혀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제3조
어른이 우리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어른은 최선의 것을 주어야 한다.

제6조
모든 사람은 우리들, 아동과 청소년 모두가 생명을 누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12조
어른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에겐 우리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제13조
우리는 말과 글과 예술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것을 알고 우리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는 않는지 잘 생각해서 해야만 한다.

제14조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고, 우리 자신의 종교를 정할 권리가 있다. 부모님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셔야 한다.

제15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사귀고 모임을 만들 권리가 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 위한 모임은 안 된다.

제16조
우리는 사적인 삶(프라이버시)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제17조
우리는 라디오, 신문, 텔레비전, 책 등을 통해 세계 곳곳의 정보를 모을 권리가 있다. 어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제18조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를 기르는 노력을 두 분이 함께 해야 하고,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해 주어야 한다.

제19조
아무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해쳐서는 안 된다. 어른들은 우리가 매 맞거나 무관심 속에 내버려지게끔 놔두지 말고 우리를 보호해줘야 한다.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우리들을 해칠 권리가 없다.

제22조
우리가 망명자인 경우, 우리는 특별한 보호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23조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장애인인 경우,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날 수 있도록 특별한 보살핌과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24조
우리는 건강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아플 때 전문적인 치료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어른들은 우선적으로 우리가 아프지 않도록 먹이고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27조
우리는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등을 주어야 하고 만일 부모님이 어렵고 힘든 경우에는 나라에서 부모님을 도와주어야 한다.

제28조
우리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초등교육은 무료여야 한다. 또한 그 이상의 교육에도 무료 교육을 도입하여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학교 규율은 우리 모두가 귀한 사람이라는 데 어울리는 것이어야 하고, 뭐든지 이 협약에 맞도록 운영돼야 한다.

제29조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것은 우리가 가진 사람됨, 재능,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맘껏 키우기 위해서이다. 또한 교육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깨끗한 환경을 생각하며, 책임질 줄 알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제30조
소수집단(예를 들어 미국의 인디언이나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에 속하는)의 아동과 청소년에게도 자신만의 문화를 즐기고,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며,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제31조
우리에겐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32조
우리가 일을 해서 돈을 벌 때는 건강에 안 좋거나 학교에 가지 못할 상황에서 일하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가 일을 해서 누군가 돈을 번다면 우리는 우리가 일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제34조
우리는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아무도 우리 몸에 우리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할 수 없다. 곧 누군가가 함부로 우리 몸을 만지거나 사진을 찍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게 할 수는 없다.제37조우리가 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다.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심한 창피를 주거나 상처를 주는 벌을 내릴 수는 없다. 최후의 방법인 경우를 빼고는 우리를 감옥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감옥에 들어갔을 경우 우리는 감옥에서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와 정기적으로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38조
우리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15살까지는 절대로 군대에 들어가거나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이 나이는 나중에 만들어진 국제협약으로 18세로 바뀌었다.)

제40조
우리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을 경우, 우리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경찰과 변호사와 법관은 우리를 존중하여야 하고 모든 일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제42조
모든 어른과 아이는 이 협약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에 대해 배울 권리가 있고 어른들도 역시 이 권리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

아동권리협약에는 모두 54개 조항이 있는데, 나머지 조항들은 모든 아동과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가질 수 있으려면, 어른들과 정부가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협약을 직접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과 협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아동․청소년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곧 다른 아이들을 돕는 일이 됩니다. 아동과 청소년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수록, 사람들은 모든 아이가 건강하고 안전하고 자유롭게 자라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도와주려고 할 테니까요.

덧붙임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