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한켠에는 'UN 아동권리조약' 포스터가 걸려있다. "13조. 우리는 말과 글과 예술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것을 알고 우리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 "31조. 우리에게는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의 아동에게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이 조항들을 보면서 나는 반성 섞인 분노를 하게 된다. 왜 이제까지 이러한 권리가 나에게 보장되어 있는지도 모른 채 기본적인 권리를 빼앗기며 살아왔는가!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 청소년 중에 이러한 권리가 자신에게 보장되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금 시대에 '인권'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로 손꼽힌다. 제도권 교육에서도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복지국가의 탄생 배경이나 시민사회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인권'이다.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우리 청소년이 누려야 할 인권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인권교육 후에 있을 학생들의 반발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인권의 사각지대로 이미 인식되어 있는 학교의 특성상 못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다. 수세미가 나오는 학교 급식과 야간 타율학습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학교 현실에서 "어른이 아동에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어른은 최선의 것을 해주어야 한다"라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커리큘럼을 짜는 사람도 알고 있겠지!
이러한 인권교육의 부재는 청소년들을 인권에 대해 무지하게 만들고, 어떤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청소년들이 느끼는 전반적인 사회환경도 인권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는 경쟁에 노출되어 1등을 할 것을 강요받고, 미디어에 의해서는 명문대에 진학한 후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출세하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주입받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 '여가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것은 성공을 위한 당연한 대가라고 여긴다.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좀 더 나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청소년에게 '인권'이라는 단어는 껍데기가 되어버린다.
학교와 사회는 '인권'을 짓밟고 있다. 청소년들은 그 속에서 불만은 갖지만, 그것을 정당한 요구로 만들지 못한 채 스스로 인권을 포기하고 점점 비인간화 되어간다. 이런 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인권교육이 절실하다. 교육은 청소년이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인권을 쟁취할 수 있는 기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을 모르는 것은 인권을 탄압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아무리 훌륭한 권리를 명문화하여 인정한다 하더라도 권리의 주체들이 그 내용을 모른다면 쓰레기가 될 뿐이다. 그래서 UN아동권리조약도 "모든 어른과 청소년은 이 조약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에 대해 배울 권리가 있고 어른들도 역시 이 권리들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는 것일 게다. '인권 알기'는 '인권 쟁취'의 첫걸음이므로.
(선미 님은 청소년의 힘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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