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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학생인권조례 정착을 위한 과제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⑧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시행 일 년이 되었다. 이어 광주와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하여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하면서 그 원인이 인권조례에 있다는 일부 언론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보도가 눈에 띠게 늘었다. 학교폭력이 학생인권조례 탓이란다. 이를 기회삼아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을 연계시키려는 이념쟁이들의 정치적 꼼수가 점입가경이다. 학생의 죽음을 계기로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려보겠다는 그들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학생인권조례가 다시 세간의 논쟁이 되는 상황에서 왜 굳이 ‘학생인권조례’이어야 하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인데 굳이 ‘학생’으로 한정하면 오히려 인권의 범주를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는 일부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질을 이해하려면 우리나라 학교구조의 현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의 학교문화는 철저하게 수직적인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은 소수자, 즉 약자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는 교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그동안 일방적으로 빼앗겼던 권리를 그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일 년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한 경기도의 지난 일 년을 평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학생과 교사 사이의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드는 등 학교문화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와,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으로 교사의 권위가 떨어져 학생을 교육하기가 어렵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인권을 매개로 학교문화 개선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분위기다.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으로 학교는 외형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억압적인 교문지도와 두발 단속이 사라졌다.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강제 보충수업과 강제 야간자율학습도 사라졌다. 퇴학이나 강제전학도 절차와 근거를 명확히 함으로써 학업 중단학생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이런 외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근본적인 변화를 실감하기가 어렵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그래서 교사들이 느끼는 당혹감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기보다는 변화 자체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기에 교육청의 인권감수성, 인권적 업무처리, 인권교육 등의 경험이 일천한 관계로 인권정책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것도 학교 현장의 당혹감을 줄이는데 실패한 원인의 하나다. 반면에 인권조례를 학교에 안착시킬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탐색하는 노력도 일부에서 진지하게 일어나고 있다.

인권교육과 자치

학생인권조례가 학교에 정착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권교육의 활성화다. 인권교육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 학교관리자, 교직원, 교육청 공무원 등 교육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지금의 인권교육은 학생 위주로 시행되고 있으나, 이마저도 형식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많은 학생을 한 곳에 모이게 하여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교육방식은 오히려 학생들에게 인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내실 있는 인권교육을 위해서는 인권교육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감수성과 식견을 갖춘 강사진의 확보,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교과시간을 활용한 인권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추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교육환경, 교육과정, 교육내용 등 모든 것이 인권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두발과 체벌에 머물러 있는 인권에 대한 학생과 교사의 인권담론을 확장시키는 것도 교육을 통해서 기대할 수 있다. 인권교육은 조급히 시행되기보다 강사를 양성하고 교재를 구축하는 등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학생의 참여와 자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기존의 학생회 활동은 수동적이었다. 지도교사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치와 참여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자치와 참여 기회 확대는 권리 담론을 넘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학교문화의 근본적인 변화

학교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는 필연적으로 인권침해가 뒤따른다. 한쪽의 권리가 침해되는 순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없다. 권력 관계에서 약자는 늘 침해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획일적이고 통제 중심의 수직적 학교 문화가 상호 존중하고 이해하는 수평적 문화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교사와 학생의 인격적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 모두의 인권이 보장될 때 조례가 정착할 수 있는 것이다.

교사의 권리도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교사의 권리는 학생의 권리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전문성, 참정권, 노동권, 교무회의에서 발언할 권리, 교육과정 편성권, 평가권 등이 교사의 권리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권리가 침해된다면 그 원인을 찾고 권리보장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일부에서 학생인권과 대립적 개념에서 ‘교사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학생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는 학생인권 보장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에서 일부의 권리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것이 조례의 기본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제한 근거를 들어 권리를 최대한 제한하려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의 학생생활규정에 대하여 학생인권조례보다 더욱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도록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희망을 건다

학생인권조례 정착을 위해 지역의 시민사회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학생인권조례 시행으로 학교를 보는 시민사회의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청소년 유관기관이나 인권단체 등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이들 시민사회 진영은 교육청과 협력 및 감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권실천계획이 바르게 수립될 수 있도록 비판과 감시 역할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ㆍ벌점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상ㆍ벌점 제도는 위기의 학생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벌점은 일반적인 수준의 학생 권리 보장을 위해 문제가 되는 학생을 걸러내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어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모두에서 언급했듯이 학교폭력과 인권조례를 연계시키는 보수 세력들의 공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경기나 광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운동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경기도 몇 학교 사례는 매우 고무적이다. 인권친화적인 학교문화가 정착하면서 학교폭력이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물론 인권조례 하나만으로 학교폭력이 줄어든 것이라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인권친화적인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소통과 공감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고양시의 ㄷ중, 의왕시의 ㄷ중, 의정부시의 ㅇ여중, 시흥시의 ㅈ중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인권조례에 더 큰 희망을 걸어본다.
덧붙임

조성범 님은 산본공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경기도인권교육연구회장 일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