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노동자의 존재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르바이트생, 현장실습생 등의 이름으로 청소년노동자들은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맘껏 부려먹을 수 있는 값싼 노동력으로 노동시장을 드나들고 있다. 지난 14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발표한 간접고용 현장실습생들의 인권침해 실태는 청소년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 바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적 노력은 미미하다. 지금껏 인권교육은 인권 일반에 관한 지식이나 태도, 인권감수성을 고양하는 데 중점을 둬 노동인권에 관한 심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학교내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교육에서도 노동자 인권문제는 주변적으로만 다루어지는 것을 넘어 아예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으로 점철돼 왔다. 이를 넘어서려는 대안적 노동교육의 흐름도 근로기준법에 관한 강의식 교육 정도에 머물렀다. 최근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관심과 실천이 늘어나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권교육운동의 응답이다.
교재 발간, 워크숍, 인권학교 줄이어
지난 8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1년 반 가량 프로그램 개발과 학교현장에서의 실험을 거쳐 교사와 교육활동가들을 위한 노동인권교육 지침서를 처음으로 내놨다.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라는 제목의 이 책은 인권교육 방법론의 원칙에 따라 청소년들이 쉽고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노동인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 프로그램과 읽을거리를 담고 있다.
책의 발간에 즈음하여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노동인권교육의 발걸음을 함께 할 '주체 만들기'로 활동의 폭을 확장한다. 8월 19일과 20일 1박 2일간 열린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워크숍'에는 교사, 민주노동당 중앙과 지역위원회 교육담당자, 인권단체 교육활동가, 청소년지도사 40여명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에게는 책에 실린 대표적 활동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자기가 속한 단위에서 실천 가능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짜보는 훈련 기회가 주어졌다. 이 자리에서 현장실습생 권리찾기 수업, 알바 권리찾기 인권학교, 일하는 청소년을 위한 인권캠프 등 다양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배움터가 제안됐다.
워크숍 이후 참가자들은 홀씨가 되어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노동인권교육의 장을 열어나가게 된다. 그 선두에 선 것이 바로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민주노동당 동대문위원회는 지난 11월 26일 당내 청소년위원회와 함께 '알바 청소년들의 권리찾기'라는 이름으로 노동인권학교를 열었다. 동대문지역 청소년들을 초청한 이날 인권학교에서는 노동자의 개념을 알아보는 '동그라미의 비밀', 노동과정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인권침해 상황을 알아보고 저항의 기회를 가져보는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서'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관악구위원회도 이달 두 차례에 걸쳐 인헌고등학교 등 지역 학교를 직접 찾아가 노동인권교육을 진행했다. 그 외에도 다수의 당 지역위원회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장을 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고, 서울·경기 이외의 지역에서도 워크숍 개최 요구가 퍼져나가고 있다.
민주노동당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인권교육의 중요성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전교조실업교육위원회는 내년도 중점사업으로 노동인권교육에 주력할 계획이다. 내달 17일부터 열리는 참교육실천대회에서 실업고 교사들이 노동인권교육 수업안을 직접 짜보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달 두 차례에 걸쳐 열린 '예비 사회인을 위한 열린학교'에서 노동인권 배움터를 마련했던 부천시청소년수련관을 비롯, 청소년지도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지원하는 일만 업으로 삼고 있는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도 노동인권교육으로 활동의 폭을 넓힐 계획을 갖고 있다.
국회에서 정책토론회도 열려
노동인권교육 실천이 본격화되는 동시에 노동인권교육을 학교 안에서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모색도 움트고 있다. 지난 15일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과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최한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개선방안 토론회'는 국내외 학교 노동인권교육의 현황을 둘러보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노동교육원 송태수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 중학교, 일찍이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 고용에서의 평등 등 노동인권교육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학교에서는 노동인권교육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학교 노동교육이 노사갈등 정도만을 미미하게 다룰 뿐 노동인권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는데다, <법과 사회> 등 그나마 노동인권을 다룬 선택 교과서는 일선 학교에서 거의 채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노동인권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편과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주 전교조실업위원회 정책국장은 "교육과정의 전면 개편까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고1 필수과목인 사회과 수업을 통해 노동인권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넘어야 할 산 아직도 많다
그러나 노동인권교육이 자리 잡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특히 학교 안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확산시키기까지에는 더더욱 많은 걸림돌이 도사리고 있다.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사회와 교육계의 관심이 미미한 것도 문제지만, 노동인권교육을 파편적 법교육과 동일시하거나 '불온시'하는 정부당국의 인식도 문제다.
최근 강원도교육청이 전교조 강원지부가 노동인권교육을 주제로 한 교사 직무연수를 신청하자 '내용의 편향성'을 이유로 들어 불허한 일이 발생했다. 교육당국이 노동인권교육을 어떤 시선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5일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교육부 박삼서 교육과정정책과장 역시 '불법 아르바이트 금지를 위한 학생생활지도'를 노동인권교육의 일환으로 언급하는 한편, 학생의 학습부담 증가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노동인권교육 가운데 '내용의 정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활지도나 교과수업 시간에 교사가 일방적으로 빈약한 노동법 조항 몇 가지를 읊어대는 정도로 제한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교육당국의 태도는 프랑스 교육당국의 태도와 사뭇 대조적이다. 프랑스 교육과정 지침서는 "기업체 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노동자로서 인간은 '체인(테일러주의)'의 하나나 도구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다루어져야 한다. 각각의 노동자는 일정한 권리와 자유를 부여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노동인권교육이 학교 안에서 꽃피기 위해서는 교육당국의 인식 개선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