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쉽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괴롭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에 죽음을 결행한다. 지난 1월 23일 엘지 유플러스 전주 콜센터(LB휴넷)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실습생이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그가 왜 죽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는 스트레스가 큰 SAVE(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했다. 해지하려는 고객을 설득해서 돌리는 일이다 보니 감정 노동이 심하다. 2010년에도 이 부서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홍모 씨가 고등학교에서 전공한 것은 애완견과 관련된 것이었으나 실습은 전공과 상관없는 곳에서 했다. 특성화고 지원 정책 탓이다. 중소기업청의 특성화고 지원액은 학교 한 곳당 1억7000만 원인데 취업률이 45.5% 이상이 돼야 한다. 다시 말해 취업률이 45.5% 이상 되지 않으면 학교는 지원금을 못 받는다.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은 실적 압박 및 초과 근무 등 부당노동행위를 했는지 조사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교육청도 상황조사팀을 조직하여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과 교육청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는 협약서에 명시된 것보다 더 길게 일했고 임금은 현장실습 협약서에 비해 월 27~45만 원가량 낮게 받았다. 그런데도 기업은 사망과 업무 스트레스는 관련이 없다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죽음을 부르는 기업-정부-학교의 동맹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제도는 죽음을 부르는 제도다. 벌써 몇 번째인가.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이상 일하던 현장실습생은 과다노동 때문에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가 됐다. 기아차가 매년 늘어나는 자동차 생산 대수를 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그 자리를 현장실습생으로 채우면서 발생한 사고다. 2014년 1월,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직원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고, 2월에는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현장실습생이 공장 지붕이 무너져 사망했다.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현장실습생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 제도에서, 현장실습생들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야간노동 강요를 피하기 어렵다. 얼마 전에 또 여수산업단지 대림산업 협력업체에서 현장실습생이 근무지에서 자살했다. 왜 취업한 지 2개월 만에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과다노동에 지문이 닳아 없어진 그의 몸은 말하고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의 노동 착취는 특성화고 청소년들을 끌어들이며 그/녀들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그 결과 현장실습생 제도는 저임금, 장시간 야간 노동을 통한 기업의 이윤 생산 엔진이 되었다.
특성화고 학교 수업을 파행시키고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현장 실습이 비판받으면서 2006년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이 마련돼 시행된 적이 있다. 기업 파견형 현장실습을 직업 체험, 교내 실습 등으로 다양화하고, 파견형일 경우에도 3학년 2학기 수업의 3분의 2를 이수한 이후에 실시할 수 있으며 졸업 뒤 해당 기업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로만 한정했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학교자율화 조치'에 따라 이 지침은 폐기됐다. 특성화고 취업 기능 강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취업률에 따라 예산을 차등 지원하고 학교 통폐합 등을 진행했다.
그에 반해 현장실습생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제도는 여전히 없다. 현장실습생 청소년들이 대부분 고3인 경우가 많아 근로기준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만 18세 미만의 야간 노동 및 휴일 노동 금지 조항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2016년 8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에서 나이 규정을 삭제했지만 근로기준법보다 알려지지 않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노동부의 현장실습생 관련 관리 감독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2015년 4월 감사원은 '산업 인력 양성 교육 시책 추진 실태' 결과 보고서에서 전공과 관련 없는 업체나 현장실습 제한 업체에 실습생 파견 문제, 현장실습 표준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 체결 문제 등을 지적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학교는 인력파견 업소?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청소년 노동권 보장이나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학교는 더 많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학생의 '전공을 살리는' 실습이 아닌 '취업률을 높이는' 실습을 추천한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이 일하는 회사에 현장실습생 교육프로그램을 요구하지 못하며 실습 업체와 학생의 전공 간 연관성도 보지 않는다. 학생들이 파견 나간 업체가 어떤 곳인지, 노동조건은 어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 결과 특성화고의 취업률을 높아졌지만 고용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취업 비율은 2012년 79.6%에서 2015년 58.8%로 급감했다(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 발표 자료). 한마디로 특성화고는 나쁜 일자리로 나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
학교에서 노동 인권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취업률 향상만을 주입받은 현장실습생들은 나중에 올 후배들을 생각하며 힘들어도 뭔가 잘못됐다 느껴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학교는 학생들을 노예적 노동시장에 팔아서 돈을 버는 인력파견 업소가 되어 가고 있다. 정부나 기업에는 낮은 임금으로 쉽게 노동 인력을 공급하는 제도이자 학교는 지원금을 받는 수단일 뿐이다. 현장실습 제도 폐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이유다.
현장실습생이라는 존재는 인권의 주체인가
현장실습생들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만만치 않은 노동 속도와 괴롭힘의 관행에 익숙해지며 착취당하는 경험을 쌓을 뿐이다. 현장실습생 제도를 훑어보고 있노라니 현장실습생은 과연 인권의 주체인가 싶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권리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게 인권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별이 그렇고 나이가 그렇다. 현장실습생 제도는 교육의 이름으로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아직 노동은 하지만 취업은 하지 않은 존재로 규정하며 노동권을 부정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게 교육이라며 교육권을 침해한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학교는 현장실습생을 과도기의 존재로 규정하며 인권의 보편성보다는 권리를 제한할 특수성의 이유를 강조한다. 엿장수 맘대로다. 노동권과 교육권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인권의 주체로 상정하면 될 일이다.
인권 보장의 내용을 주체와 상황에 맞게 구체화하는 법제도가 필요하다. 특성화고 학생들도 노동자로서 알아야 할 권리와 일할 때 필요한 지식과 훈련, 그리고 그 시기에 필요한 교육과 교우관계 등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목표가 대학 입시가 돼서는 안 되듯이 특성화고의 목적은 취업률을 높이는 게 아니다. 먼저 계속된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 파견형 현장실습을 우선 중단하고 청소년에 대한 노동인권 교육은 실시해야 한다. 특성화고 취업률 경쟁에 학생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2015년 감사원에서 지적한 문제점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 학교가 수수방관할 수 없도록 현장실습 산업체에 대한 감독이 구체화돼야 한다. 끝으로 현장실습생 노동보호에 관한 법제도(근로기준법, 최저임금 등)를 개선하고 현장실습생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