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요양시설의 인권침해가 폭로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시설폐쇄 등 실효성 있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본지 2003년 11월 28일자 참조>
8일 '조건부신고복지시설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아래 공대위)는 충남 연기군 은혜사랑의집(원장 전월순)과 관할 연기군 보건소를 방문해 개선사항을 점검했다.
먼저 지난해 11월 조사에서 지적됐던 △감금과 강제금식 등 이른바 징벌방 성격의 '보호관찰실'은 폐쇄됐고 △남자용 숙소보다 열악했던 여자용 숙소를 새 건물로 옮기는 등 일부 생활환경이 개선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고쳐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 외부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 등 강제 수용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려내 퇴소시키고 필요한 경우 인가된 수용시설로 옮기고 기존 시설은 폐쇄해야 한다는 지적은 묵살됐다. 또 알콜중독자와 정신질환자가 함께 수용돼 상대적 약자인 정신질환자가 고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여전했다. 공중전화와 우체통이 새로 설치돼 관리자 검열을 거치지 않게 됐지만, 식사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고 그나마 한 대뿐이어서 100여 명에 이르는 수용자들에게는 턱없이 모자랐다. 길게는 40일 동안 계속됐던 철야기도는 없어졌지만 새벽 4시 30분부터 시작되는 하루 3차례 예배는 그대로였다.
이에 대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희선 간사는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기약 없이 감금돼 있는 이들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하루빨리 정신과 전문의 진단을 실시해서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자유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 일부 손봤지만 핵심 문제는 여전
하지만 정부는 인권침해 상황을 서둘러 개선하기보다는 책임 떠넘기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산하기관에 인권단체의 조사와 언론보도에서 제기된 △불법감금 및 폭력 △창문 쇠창살, 출입문의 외부 잠금 △각종 질환 발생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 차단 △특정 종교활동 강요 등 인권침해 사례를 예시하며 집중 점검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주요 조치사항으로 △입소생활자를 개별 면담해 침해사례 발견 시 관련법에 의거 조치하고 △정신과 전문의 진단결과에 따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정신질환자의 경우 시설을 옮겨 전문요양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문제가 있는 경우 수사의뢰와 '조건부 신고시설' 철회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도 주문했다.
하지만 연기군보건소 권오석 소장은 이날 대책위와의 면담 자리에서 "정신과 전문의 진단을 의뢰할 수 있는 재정이 부족한 상태"라며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지자체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희선 간사는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시설 생활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직접 보지 못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며 "지침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일선에서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 시설폐쇄 이후에 수용자들은 어떻게 할지 보건복지부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공대위는 이달 말 '조건부 신고시설' 관련 토론회를 열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조속한 대책마련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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