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수용 강요·선별 재입국 가능성 등 문제 많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무조건 강제 추방하려는 정부 정책이 '자진출국 후 재입국 보장'으로 일부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재입국 방식이 고용허가제여서 근본적인 문제점은 덮어둔 미봉책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17일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 관계자들과 이주노동자 농성지원단 관계자들의 면담이 있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날 정부측은 △4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일시 귀국하면 고용허가제로 우선 재입국할 수 있도록 하고 △5∼7개로 예상되는 '고용허가 이행보장각서'(MOU) 체결 대상국 출신이 아닌 경우 별도의 재입국 과정을 추후 논의하며 △이를 준비하기 위한 출국 유예기간을 2월말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단, 강제출국된 이주노동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자리에서 최경수 사회수석조정관은 "자진출국하면 재입국을 보장할테니 믿어달라"고 말했다. 또 법무부 이민희 출입국관리국장은 지난 9일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앞 단속과정에서 발생한 성직자 폭언·폭행에 대해 사과했고, 최 사회수석조정관은 재발방지를 위한 단속반원 재교육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제안은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 우선 그 동안 오락가락했던 정부정책이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언제든 파기될 수 있는 구두약속이 아닌 문서로 '재입국 확인서'를 발급해야 한다. 또 재입국 대상국을 일부 국가로 한정해서는 안되며, 자진출국 유예기간에도 여전한 '인간사냥'도 중단돼야 한다. 한편으로 버마민족민주동맹(NLD) 당원처럼 귀국할 경우 처벌이 우려되는 경우는 절대 추방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고 주기적으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등 독소조항으로 가득 찬 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여전히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명동성당 농성단 측이 18일 농성자 총회를 통해 이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샤멀 타파 이주지부장은 "우리는 산업연수생 제도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고용허가제에 반대하며 싸워왔다"며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고용허가제로의 재입국은 지금의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 뿐"이라며 반대했다. 그는 "차라리 여기서 잘못된 제도를 고치기 위한 싸움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하지만 농성이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정부 제안의 미비점이 보완된다면 재입국 후 고용허가제와 싸우는 투쟁을 준비하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한편 19일 오후 명동성당 농성단 이주노동자 60여 명은 지난 7일 방글라데시 대사관 근처에서 일어난 '가스총 단속'과 관련해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와 용산경찰서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에 인권침해 진정서를 냈다. <관련기사 본지 2004년 1월 9일자 참조>
방글라데시 노동자 자히드 씨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인권위가 있다는데 왜 한국정부의 강제추방 정책과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