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유족을 두 번 죽이려나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법 제정 촉구, 전국 유족들 한나라당 항의


지난 7일 한나라당이 민간인학살진상규명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보류하자 유족들이 연일 항의방문, 농성, 기자회견 등을 통해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19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경기, 대전, 경남 등 전국 8개 지역의 유족 100여 명은 17, 18일 해당 지역 한나라당 지구당을 방문, '6.25휴전이전민간인희생자진상규명및명예회복에관한법률'(아래 민간인학살진상규명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했다. 이미 지난 13일 유족 300여 명은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앞에서 항의집회를 가진 바 있다.

부경유족회 이규희 씨는 "민간인학살진상규명특별법이 국민적 지지로 법사위까지 통과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폐기가 뻔하다"며 "도둑놈이 제 발 저린다고 한나라당은 학살을 감추기에 급급할 뿐, 묻혔던 과거에 대한 진상 규명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산청군 시천·삼장유족회 정맹근 씨는 "50년 넘게 한을 안고 살아왔는데 거대 야당의 반대로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고 "유족들이 고령이어서 세월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라며 애끓는 심정을 전했다.

17일 김희석 씨 등 부경유족회 유족 20여 명이 오전 10시 한나라당 부산지부를 항의방문 하는 것을 필두로 거창지역 유족들은 지구당 앞에서 6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했고, 대전유족회는 한나라당 중구·북구·유성구 등 지구당 방문 이후 대전 역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며 법 제정을 호소했다. 또한 18일 10시 전주형무소 유족은 전북평화인권연대 등 지역 인권사회단체와 함께 민간인학살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고, 산청군 시천·삼장유족회 유족 10여명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경남 산천 한나라당 사무실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유족들의 이런 대응은 19일 16대 국회가 사실상 마감되면 지난 3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간인학살진상규명특별법은 지난 2001년에 입법 발의되어 1년 반 넘게 묵혀 있다가 2003년부터 유족들과 인권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공론화됐다. 지난해 11월 국회는 과거사특위를 구성해 과거사 관련 법안을 심의하였고, 민간인학살진상규명특별법은 2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몰역사적 인식이 막판 '발목잡기'로 작용,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과 반세기 넘도록 숨죽여 살아왔던 수백만 명 유족의 한맺힌 호소와 기다림이 또다시 외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