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과 평등텐트촌을 펼친 지도 1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단식농성 이전에 진행했던 활동도 함께 떠오릅니다. 2020년 전국순회 평등버스, 2021년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 성사와 #평등길1110 부산-서울 도보행진, 2021년 말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국회 앞 농성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 활동,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 2022인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한끼>’, 그리고 여기에 차마 다 적지 못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활동들까지. 단식농성과 평등텐트촌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2017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재출범 이후의 수많은 활동입니다.
그럼에도 평등의 봄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2023년이 된 지금도 우리는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사이 대통령이 바뀌고, 곧 있으면 국회 구성도 바뀌는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다시 싸움을 준비하며 숨을 고르고 방향을 살피는 중인데요. 사랑방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만들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를 가늠하는 상임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2017년 차제연 재출범,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해왔나
한국 사회에서 처음 차별금지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06년의 일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는 첫 권고가 있었고, 당시 법무부는 이 권고를 받아 ‘차별금지법제정추직기획단’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인 2007년 법무부에서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하자 보수 개신교 세력의 조직적 반대가 이어졌고, 이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포함한 7개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하는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를 일으킵니다. 당시 성소수자 운동과 반차별 운동 단위들은 누더기 차별금지법을 저지하고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연대활동을 진행했고,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해당 법안이 폐기된 이후에는 반차별공동행동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까지 활동이 이어져 왔습니다.
이후 2015년에 잠시 활동을 중단했던 차제연은 2017년 재출범을 선언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제 2라운드를 열었습니다. 촛불집회와 박근혜 파면 이후, 새로운 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차제연 재출범이 이러한 기대에 편승하며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을 만나 ‘차별금지법을 불필요한 논란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반으로 나눌 수 있냐는 질문에 ‘나중에’로 응답했으며,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는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천명했습니다. 촛불과 탄핵 시기, 민주주의에 대한 상찬과 개혁에 대한 기대가 넘쳐났음에도 ‘그들의’ 민주주의와 ‘그들의’ 개혁 안에서 평등에 대한 의지를 발견하기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적폐청산과 개혁을 내세우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알아서 잘'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줄 거란 기대가 애초에 만들어질 수조차 없었던 배경입니다. 이러한 ‘나중에 정치’를 직접 끝내고자 하는 사회운동단체들의 의지가 모여서, 2007년 33개 단체로 출발했던 차제연이 2017년 100여 개의 단체로 재출범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 문재인 정부와 국회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면할 때, 이는 오히려 운동이 더욱 모이고 외치게 되는 조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에 평등을 위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 순간 느꼈던 사회운동단체들은 우리가 직접 평등을 지어나가자는 다짐을 모았습니다. 차제연은 재출범 이후 수많은 영역과 지역의 사회운동단체와 만나며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각 단체의 의제와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왜 ‘우리’에게 차별금지법이 필요한지를 밝혀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지역 차제연의 건설과, 각자의 목소리로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평등을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끓어 넘칠 때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운동의 운신에도 수많은 제약을 가했지만, 그럼에도 전국순회 평등버스와 같이 평등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1년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과 2022년 국회 앞 농성으로 이어지는 차제연의 대국회 투쟁은 바로 이러한 힘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대국회 투쟁과 ‘정치의 실패’ 이후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 성사 이후 대국회 투쟁이 진행되던 시기, 21대 국회에는 4개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차별금지사유 삭제로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를 만들었던 17대 국회, 민주당 의원이 스스로 법안을 자진 철회했던 19대 국회, 단 한 개의 법안도 발의되지 않았던 20대 국회를 떠올릴 때 커다란 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진전이 국회가 만든 진전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대국회 투쟁을 진행하며 점점 확실해졌습니다. 21대 국회는 국민동의청원 성사 이후 법이 정한 심사기간인 90일 동안 법안에 대한 심사를 시작하지도 않았고, 두 차례에 걸쳐 심사 기간을 국회 회기 말까지 연장하기만 했습니다. 민주당의 단골 핑곗거리였던 ‘사회적 합의’라는 말은 10만행동 성사로 이미 그 효력을 다했지만, 이후에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기는커녕 국회 안에서 유의미한 토론의 주제로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차제연의 대국회 투쟁은 ‘민중의 정당’을 자처하는 민주당의 민주주의가 지닌 기만성과 허구성을 폭로했습니다. 단식행동을 마무리하며 차별금지법 없는 현실이 운동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의 실패’임을 선언한 이유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핑계 삼으면서 합의를 만들 의지도 능력도 보이지 않는 정치, ‘약자/소수자에 대한 배려’ 이상으로 평등을 상상하지 못하는 정치의 한계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선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실패’가 곧장 ‘운동의 실패’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 차별금지법 제정과 평등의 추구라는 목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결국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정치가 실패한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무엇을 해나가야 할까요. 차제연에서도, 그리고 사랑방 상임 워크숍에서도 주요하게 나눌 수밖에 없었던 고민입니다.
평등을 기치로 세상을 바꾸려는 세력은 어떻게 모일 수 있을까,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전망과 전략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는 결국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사회, 차별금지법을 통해서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일 겁니다. 차별금지법이 그저 ‘차별하지 않는 사회’라는 막연한 이상을 이야기하는 법이 아니라 차별받는 사람들이 손에 쥐고 싸울 수 있는 법,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법이라는 걸 확인할 때, ‘나와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만들기 위해 모이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테니까요.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평등한 사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법인지를 실감할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은 앞으로 다시 사람들과 만나고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가려 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차제연 담당을 맡게 되면서 걱정이 컸습니다. 그간 사랑방이 주요하게 결합해온 활동인 만큼 옆에서 보고 들은 게 있었지만, 주요한 일정이나 집회에 결합하는 일 이상으로 참여해본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차제연 활동을 해온 몽 활동가와 함께 하겠지만,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긴 역사와 현재의 고민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의 자리와 역할을 찾는 일이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서 그 걱정이 전부 해소되었냐고 하면 당연히 그렇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차제연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자리까지 와 닿았는지를 함께 확인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정치가 실패한 이 자리에서, 다시 평등을 짓는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