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가 되어버린 이름, 박일수.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현대왕국' 하청노동자의 절망과 분노를 가슴에 품고 죽음의 공포를 넘어야했던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하청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다가 강제해고라는 철퇴를 맞고 좌절해야했던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
그가 세상에 남긴 석 장의 유서는 자본의 착취에 죽어가면서도 싸울 엄두조차 못내는 하청노동자의 응어리진 분노로 쓰여졌다. 악랄한 자본의 차별은 모멸감을 넘어 하청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정규직노동자의 반밖에 안되는 임금은 뼈 속까지 시린 빈곤으로, 밤낮 가릴 것 없이 이어지는 연장근로로, 빗 속에서도 고압 전기줄을 목에 감고 일해야 하는 살인적인 현장으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몰아갔다. 그러나 노조활동에 조금이라도 관여하면 하청업체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탓에 하청노동자들은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을 도리밖에 없다. '단결권'을 보장한 대한민국 노동법은 하청노동자들 앞에서 멈춰버렸다. 거대한 현대왕국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일말의 희망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에서 이러한 하청노동자들은 만 5천명. 전체 노동자의 1/3에 달한다. 이는 2002년에 비해 6천여 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싼값에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는 자본의 탐욕이 전 산업에 걸쳐 비정규직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의 폭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보다 안정적인 착취구조를 만들어가려는 자본의 속셈과 맞닿아 있다.
정부는 자본의 뒤를 봐주기에만 바쁘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은폐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마치 대공장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강성노조 때문인 양 정치 공세를 펼친다. 그러나 정작 경제자유구역 등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정책으로 노동자들에게 바닥을 향한 죽음의 경쟁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바로 노무현 정부다. 분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은 자본과 정권이 공조한 '살인'이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현대중공업은 열사의 죽음을 왜곡하면서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다. 함께 싸워야할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는 자본의 장단에 같이 춤을 추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파고드는 분열공세에 동승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분열전략의 최종 도착지는 전체 노동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경쟁이며, 지금 비정규직의 분노와 좌절은 내일 정규직이 맞닥뜨릴 절망이 될 것이다.
희망은 노동자 계급의 강고한 연대와 단결뿐이다. 분열을 딛고 비정규직 철폐를 함께 외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