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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공동성명]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 셈인가? 비정규직 입법안을 즉각 철회하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 셈인가?
비정규직 입법안을 즉각 철회하라!


1. 지난 9월 10일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처우를 금지하고 남용을 규제한다는 미명하에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개정안과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정부가 내놓은 이들 입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전체 노동자를 파견노동자, 기간제노동자로 내몰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인권단체들은 차별금지는커녕 전체 노동자의 노동권을 심각하게 후퇴시킬 입법안의 즉각 철회를 요구한다.

2. 정부가 내놓은 파견법 개악안은 기존 26개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허용업무의 범위를 소수의 금지업종만 남기고 나머지 모든 업무에는 파견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전면 확대했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인건비 절감과 노동자 관리를 위해 너도나도 파견업체를 끌어들이게 되어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은 파견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현행 파견법 하에서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이 만연해 있음을 잘 알면서도 뒷짐만 지고 있다가 이제는 아예 법을 바꿔 불법 상태를 해소하겠다고 나서는 정부의 뻔뻔함에 우리는 아연실색한다. 게다가 정부안은 파견기간 초과 시 직접고용으로 간주하는 조항을 사업주의 의무조항으로 대폭 약화시켜 그나마 있던 '보호' 조항마저 폐기시켜 버렸다. 파견허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한 것도 파견기간 연장을 통해 기업이 상시적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더욱 열어준 것일 뿐, 파견노동자가 겪고 있는 주기적 고용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 정부안은 그동안 중간착취와 주기적 해고의 이중고통을 당해온 파견 노동자의 설움을 해소하기는커녕 정규직 노동자들까지도 비정규직 노동자로 만들어 파견업체와 자본에게 갖다 바치겠다는 선포에 다름 아닌 것이다.

3. 그동안 파견업체들은 인력모집과 공급, 임금정산 외에 실질적인 노무관리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임금의 30%∼50%를 매달 수수료명목으로 떼는 '사람장사'를 해왔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파견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단체교섭, 단체행동에 나서더라도 사용자는 실질적인 지휘감독권한을 갖고 있으면서도 근로계약을 체결한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게다가 사용자는 파견계약 해지나 재계약 거부 등 노동법의 해고제한 규정은 회피하면서도 노동자들을 손쉽게 집단해고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노동기구의 '임금의 보호에 관한 조약'(95호)은 노동자가 취업 및 고용유지를 위하여 근로공급 또는 모집에 종사하는 자 등 중간인과 사용자에 의한 임금공제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파견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가로막고 있는 주범은 파견제이며 파견노동자의 설움을 해소하는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대안은 파견노동의 철폐이다.

4. 정부 기간제법안 또한 기간제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제 노동의 무제한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안은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50세 이상 준고령자의 경우 등 몇가지 예외를 규정해 나머지 경우는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또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업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약 기간이 1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정부안은 사용기간을 3년까지 연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을 3년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계약기간은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며 기간이 만료되면 사용자는 노동법의 해고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그동안 1년을 초과해 일정 기간 계약을 반복한 경우 재계약 거부시에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법적으로 다투어볼 여지라도 있었으나 이제는 3년 이내에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그럴 수 있는 여지도 없어지게 된다. 이마저도 사업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등의 경우 3년을 초과해 기간제 계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안은 그동안 재계약 거부 위협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기간제 노동자들의 상황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사용자는 신규 채용자를 일정기간 계약직으로 채용한 이후 선별적으로 정규직화하거나 계약직으로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내부의 경쟁과 위계화를 강화시킬 것이며 핵심업무에도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계속 고용하거나 해고하면서 노동통제를 강화할 것이다.

5. 정부안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차별적 처우를 금지하는 방안으로 노동위원회 시정명령 제도를 내놓았으나 이는 전혀 실효성이 없다. 노동위원회에서 시정명령을 내리더라도 사용자가 불복해 대법원까지 시간을 끌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될 때를 기다려 해당 노동자와의 재계약을 거부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럴 경우 자신이 받는 차별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정부안에서의 차별은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받는 차별을 의미할 뿐이다. 자본이 현재의 업종을 더욱 세분화하여 '동종 업종'이 아닌 업종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 비교 가능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없애면 차별 자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지는 것이다.

6. 이미 지난 2001년 유엔사회권위원회는 한국정부 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한국 정부가 즉각적으로 이행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정부안은 세계인권선언과 유엔 사회권규약이 규정하고 있는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한 동등한 가치의 임금 보장은커녕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통해 차별을 없애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으로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


2004년 10월 10일

인권단체 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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