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엔 인권위에 북한인권결의안이 제기되고, 미국 상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이 상정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 인권운동 진영은 북한인권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촉발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인권운동연구소는 3월 월례토론을 통해 '북한인권과 남한 인권운동의 역할' 이란 주제로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활발한 논의를 이끌었다.
북한인권 '체제문제'로 환원하지 말아야
인권운동연구소 이창조 연구원은 "북한 인권문제의 다양성을 '체제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는 시각은 북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북한인권문제가 "어떤 것은 체제(북한식 사회주의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라 볼 수 있는 반면, 어떤 것은 국가권력의 일반적 속성이나 사회적 관용의 수준, 제3국과의 관계와 국제적 환경 등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팍스로마나 이성훈 사무국장도 "북한 내 가부장적 문제 등 체제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며 이런 접근이 북한인권을 정치화시키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식량권, 평화 정착 최우선
그렇다면 무엇부터 어떻게 북한인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창조 연구원은 "북한인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식량부족과 그에 따른 생존권 위협으로부터 해소"라고 말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이 북한에 존재하는 식량지원 대상이 650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했듯이 북한의 식량권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어 "한반도의 전쟁위협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쟁 상태 혹은 준전쟁 상태가 북한인민 전체를 위협하는 상황은 '인권보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해 국제적인 평화조성을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실질적 개입과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창조 연구원은 또한 재중 탈북자의 경우 '이주노동자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자고 제안했다. 이어 '정치범수용소' 등 구금시설의 인권문제는 1차적으로 북한당국이 외부의 접근과 조사를 수용해서 문제여부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북한의 구금시설을 문제삼는 나라들이 솔선해서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에 가입하고 자국의 구금시설에 대한 조사의 길을 열어두지 않는 한 북한의 구금시설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치적 공세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금시설의 인권문제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닌 상황에서 문제제기의 공정성과 균형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북한인권결의안 대한 한국정부 입장에 찬반 엇갈려
60차 유엔 인권위가 지난해에 이어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참석자들은 이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이성훈 씨는 올해 EU에서 준비하고 있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작년에 비해 공세적이고 강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미국은 이란이나 이라크에서와 같이 북한인권카드를 갖고 대응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창조 연구원은 "나라별 결의안과 같은 일괄적 접근방식보다는 식량, 고문 등 사안별·주제별 포괄적 접근"을 제안했다.
또한 북한인권결의안과 관련해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입장에 대해서는 '반대에서 찬성까지'까지 다양한 의견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창조 연구원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남한정부는 '당사자' 관점을 갖고 출발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남한정부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입장에 대해 이창조 원구원은 " '인권을 수단화하는 정치공세'에 반대하면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호소하는 한편, 북한 당국과의 '인권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피력하는 가운데 결의안을 '반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반면, 좋은 벗들 이승용 평화인권부장은 "한국정부가 국제사회에서 한반도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국제사회는 한국정부가 북한까지 끌어안고 가기를 기대하는데 한국정부가 반대 내지 기권 또는 불참한다면 북한을 국제사회의 미아로 내던져버리는 꼴이 된다"며 한국정부가 결의안을 찬성하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반도 인권보장과 평화를 위해 나서야
그 동안 북한인권이 정치·이념적 토대 아래에서 다뤄져왔다면 이제는 '인권의 감수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과 남북 공동의 인권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북한과는 지역적으로도 가깝고 말도 통하고, 역사와 미래를 공유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남한 인권운동가들이 북한 사람들의 생활과 인권에 당연히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조이여울 씨는 국내 거주하는 탈북자들과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실상에 대해 접근해보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북한에 들어간 한국기업의 인권침해를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권운동사랑방 이주영 활동가는 "북한인권만을 대상화하지 말고 이것을 한반도라는 틀에서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론체계를 만들고, 남북이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인권문제에 대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50년 넘는 분단체제 속에서 양쪽의 권력이 서로를 핑계 삼으며 억압적인 법과 관행들을 만들고 존속시켜 왔음을 직시하여 남북한 내 존재하는 반인권적인 법들과 관행을 해결하도록 남북한 정부에게 촉구하자는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한국인권운동 진영이 한반도 평화와 인권실현을 위해 실천이 필요하다는 공감속에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는 자리였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