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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터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

"개혁은 투쟁이다. 막연하고 순진하게 될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시작된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의 조사 활동이 6월 30일로 끝났다. 의문사위는 총 44건에 대해 '인정' 11건, '진상규명불능' 24건, 기각 7건, 각하 2건의 결정을 내렸다. 1기 때 '불능'이었던 정은복 사건을 '인정'하고, '기각'이었던 허원근 사건을 '불능'으로 결정한 것은 의문사에 대한 기준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결과였다. 과거 군사독재권력 하에서 자행된 의문사 사건의 진상규명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안고 출범한 의문사위의 2기를 마감한 지금, 1기 의문사위(2002년 4월)부터 의문사위를 지휘해온 한상범 위원장을 만났다.


▶2기 위원회를 끝내며 감회는 어떤가

안에 들어와 일해 보니 개혁반대 세력이 엄청 세다. 개혁의 타깃이 되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훼방은 조직적인데, 개혁으로 돌파해야 할 세력은 막연하고 순진하고 어찌 보면 바보 같다. 우리사회에서 공공기관이라든지 국민일반이 개혁에 대한 인식이 진지하고 깊거나 의미를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위원회 법 보강이라는 문제도 있지만, 그것 못지 않게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왜냐하면 개혁은 일종의 투쟁이다. 현실을 뚜렷하게 알아야지, '막연하게 잘 되리라, 명분이 있으니까 되리라'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장준하, 박창수 사건은 역사적·정치적 의미가 큰 만큼 위원회도 비중을 두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사건은 이번에도 '불능'이 됐다.

장준하 사건은 독재정권의 대표적인 정치학살이다. 아직도 정보공안기관의 구시대적 조직 기류, 분위기, 전통이 깨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지시도 먹히지 않는다. 박창수 사건은 정경유착 독재정권 하에서의 치안대책적 탄압의 산물이다. 이런 박창수 사건을 '노사문제' 혹은 '사법적인 개인간의 재산싸움이나 노동분쟁'이라고 보는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본질을 왜곡하게 된다. 이것은 노동자의 생존권 문제이고, 정치 문제이고, 공법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인식이 의문사위 안에서도 부족하다. 한편으로 의문사위 기구정비와 자체 역량의 한계도 문제이다. 의문사위가 대결하는 적은 '청룡도'를 휘두르는데 (국회가) 우리에겐 '찌께칼' 하나 쥐어준 게 전부다. 그 칼도 칼날이 서 있으니 대들어 보라는 격이었다.


▶1기에서 기각됐던 허원근 사건이 불능결정 됐다. 민주화운동의 관련성과 의문사의 규정에 대한 견해는

독재에 항거해 민주화운동을 할 때 탄압 받고, 재판 받고, 죽기까지 하는데 증거를 남길 수 없었다. 10년, 20년 지나서 투쟁의 증거를 대라, 더구나 죽은 사람을 놓고서 증거를 대라고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관련성이 있다는 개연성이 있으면' 일단은 인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조사 기한, 인력 등이 충분하지 못해 '불능'이 됐다. 또 민주화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공권력의 위법한 작용으로 피해자가 된 경우, 별도의 법 조항을 두어 구제하고, 국가배상의 특례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배상이 현재 10년 시효인데, 시효에 관계없이 구제해야 한다.


▶의문사법 개정에 대한 의견은

주요내용은 권한강화와 시한을 충분히 주고, 위증이나 동행명령을 거부할 때 실제로 처벌할 수 있는 것 등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공개를 거부할 때 거부 사유 소명을 확실히 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우선 이렇게라도 되면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의문사를 비롯해 친일진상규명 등 과거청산의 방향은 어떠해야 하나

일제시대 친일파나, 그 후손이나 아류들이 해방후 미군정이나 독재정권 하에서 독재나 폭정의 주역이었다. 폭정 하에서 주로 도구가 되었던 국가보안법이나 보안관찰법, 그 이전의 사회안전법 기타 특별법이 다 일제시대 치안유지법과 그 외의 부속법령을 모방한 것이다. 과거청산은 친일청산부터 해방 후의 독재잔재청산까지 해야 한다. 또 법을 장식이나 간판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구를 내실 있게 하고 기구가 제대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기 위원회 활동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분위기 쇄신을 해야 한다. 내가 미흡했던 것을 새 안목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와서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권한·시한 뿐 아니라 조직도 보완해 주어야 한다.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