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보면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 덜 힘들어요"라며 김범 어린이는 온몸을 녹일 듯이 뜨거운 햇빛에 몸을 맡긴 채 한 걸음, 한 걸음 평화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난 24일 부산을 출발해 대구, 경산, 거창, 광주, 천안, 대전을 거친 '이라크 파병반대 전국도보순례단'은 31일 서울에 도착, 시민들과 함께 반전평화'를 노래했다.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태평양전쟁피해자, 고엽제피해자 등 전쟁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한 이날 순례에는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가해 전쟁의 부당함을 알렸다.
대구에서 왔다는 한재경(초등 2) 어린이는 "이라크파병에 반대하려고 왔다"며 "이라크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전쟁은 정말 나쁜데, 왜 우리가 참가해서 사람들을 또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의왕에서 온 김범 어린이도 "'전쟁'을 말하면 '살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며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리에서 평화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고속철도 건설로 인한 자연파괴에 반대하며 '천성산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는 '도롱뇽의 친구들'도 "도롱뇽도 생명을 원해요, 도롱뇽도 전쟁에 반대해요"라는 선전물을 들고 순례에 참가했다. '도롱뇽의 친구들' 이영경 사무국장은 "모든 생명을 살리자고 하는 천성산 살리기 운동과 학살과 총으로 대변되는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은 모두 생명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서울순례에는 참가자들이 색다른 방식으로 참가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차도르를 쓴 여성, 베트남 전통의상을 입고 꽃이 꽂힌 총을 든 사람, '평화의 공'을 굴리며 행진에 참가한 사람 등 참가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시민들을 만났다. 집회와 행진에서도 발언과 구호보다는 평화의 노래가 더 많이 울려 퍼졌다.
"내 손자가 죽는다, 파병을 멈춰라"라는 노래를 부를 때에는 일본군 성노예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번 순례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부르기 위한 노래를 준비했다는 '별음자리표' 씨는 "다양한 집회의 형식이 필요하다고 느껴 순례에 참가하게 됐다"며 "노래가 구호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시민들의 호응을 보면서 새로운 형식에 대한 긍정성을 발견하게 됐다"고 전했다. 별음자리표 씨는 열린우리당 앞에서 진행되는 '파병반대 널린 노래방'도 이런 맥락에서 제안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도보순례단은 영등포역을 출발해 열린우리당 당사와 국회, 신촌, 시청앞 광장을 지나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도보순례단 최봉대 단장은 마지막 순례지인 광화문 앞에서 "파병반대 순례는 광화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파병이 철회될 때까지 평화의 발걸음을 계속 디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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