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의가 뜨겁다. 6월 2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세상이 온통 시끌시끌하다. 그 안에서 군사주의의 단편들이 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으로 북한을 지목하고, 북한을 응징하기 위해 전쟁이라도 불사해야한다는 주장은 너무 노골적이라 촌스럽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천안함 사건의 대책을 논의하는 국가고위관료들의 병역면제 사실에 흥분하고, 네티즌들은 군미필자는 공직에서 제외해야한다는 의견을 지지한다. 사고의 희생자들이 영웅처럼 묘사되고, 성금모금이 이루어지면서 추모열기가 만들어진다. 게다가 이런 모습들은 지방선거와 결합되어 전쟁 아니면 평화라는 허구적인 이분법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어있던 군사주의가 드러나고 더 심화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군사주의의 성별화 된 구조
이런 여러 논의들을 지켜보면서 누가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국가안보와 관련된 이야기의 화자는 결국 군대문제와 관련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뿐이다. 북한의 소행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정부의 뒤늦은 대응과 책임을 ‘군대를 안갔다와서’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군대문제는 소외계층을 만들어낸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군대에 못간 사람들, 군대에 안간 사람들… 이렇게 안보의 주체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발언할 자격도 얻지 못하고 온전한 국민이 되지도 못한다. 특히 분단과 대치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은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는 군사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관계의 왜곡을 만들어내고 있고 알게 모르게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군사주의가 일상적인 전쟁준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끔 한다면, 폭력을 문제해결 수단으로 용인하는 사회적 태도와 상명하복의 획일적인 문화, 성별화 된 구조는 그 속성으로 일상 곳곳에서 드러난다. 국가가 주도하는 안보를 위해서는 강한 군사력이 매우 중요하다. 군사적 폭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보호자와 보호해야할 대상이 나뉠 수밖에 없고, 보호자 없이는 희생자가 될 여지가 큰 피보호자는 그들의 희생에 감사하게 되며, 이러한 이분화는 성별화, 위계화로 연결된다. 성별 분업/차별이 없이는 군사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이 군인-남성들의 보호에 감사하면서 재생산의 도구나 사회유지의 도구로 이용되는 일은 전쟁시기 에만 국한되지 않고, 실제로 그런 구도 속에서 남성도 여성도 모두 피해자가 된다. 그래서 천안함 사고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이 ‘영웅’으로 미화되는 것이, 군미필자는 군대문제를 얘기할 수 없는 사회분위기가, 투표로 전쟁과 평화를 나누려는 구도가 여성으로서의 나는 몹시도 불편하다.
평화운동 내부의 성별화에 대한 성찰
이렇게 천안함 사건이 가져온 ‘군사주의’의 바람 속에서도, 지난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에 열린 수다회 <남성의 평화, 여성의 평화>에서는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수다회를 준비했던 것은 2010년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주제가 ‘젠더와 군사주의’로 정해졌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그동안 병역거부운동을 포함한 반전평화운동 내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고 공론화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병역거부운동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에서부터 젠더 관점에서 본 병역거부운동의 의미와 한계, 우리가 외친 군사주의의 실체와 그 말을 하고 있는 우리의 위치에 대한 다른 물음, 퀴어 이야기, 군사주의와 연결되는 다양한 이분법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민감하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흥미로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실제로 반전평화운동을 하는 많은 여성활동가들이 활동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무르는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영역에서, 그것도 군사주의에 문제제기를 하는 반전평화․병역거부운동 내에서도 성별분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가 얼마나 삶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여성활동가가 온전한 활동가로 인정받기보다는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의 수행, 즉 돌봄 노동이나 감정노동이 내외적으로 강요되는 경우들이 존재해왔다. 이는 앞서 언급한 군대․안보문제에 대한 ‘말할 자격’과도 연결되는데, 병역의 문제가 남성만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이 평화운동 내 성별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평화운동 내부에서의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이 문제의식마저 운동의 현실적 목표와 당면한 과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성별분업은 효율과 적성을 이유로 정당화되기도 하지만, 운동 내부의 젠더화 된 이분법은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특히 평화운동이 가지고 있는 반군사주의적 속성을 생각한다면 이런 문제제기들은 더욱 의미가 있다.
반군사주의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평화가 되기를
그런 의미에서 여성주의적 관점과 접근은 일부의 평화가 아니라, 대의에 희생되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소외를 극복하는 평화를 만들어간다는 차원에서 평화운동에 필요한 부분이다. 국가 중심의 군사안보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불평등을 드러냄으로써 전쟁/평화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고 안보의 개념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평화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논의들이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며 일상의 군사주의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군사질서를 통한 국가 중심의 평화유지나 전쟁의 부재로서 주어지는 평화가 아니라 군사주의를 확산시키면서 파생되는 일상의 폭력, 성별간의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을 성찰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때로는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렵지만, 경계를 넘고자 하는 여성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덧붙임
여옥 님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