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민중재판을 마치며
4일 동안 진행된 국제전범민중재판이 지난 11일 끝났다. 매일 밤 자정 무렵까지 이어진 강행군이었으나 침략전쟁의 성격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은 허리를 곧추 세우게 했다.
배심원단의 말처럼 "막연하게 심정적으로 파병을 반대"하기에 재판에 참여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비워내고 처음으로 돌아가 이라크를 보려"했다. "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시간, 제국주의 미디어의 얘기가 아닌 이라크인의 목소리 그대로를 드러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참여자들은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고, "실제로 이라크인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주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다.
이라크침략전쟁이 왜 인권침해인지를 판단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재판부로 참여한 내게도 마찬가지의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 문정현 신부께서 진지하게 "유죄요 무죄요"를 필자에게 물을 정도로 변호인단의 변론은 열을 뗬다. 배심원단의 고개가 갸우뚱한 것 같지 않냐는 기소인단의 걱정 어린 목소리도 있었다.
피고인 조지 부시, 토니 블레어, 노무현을 위한 변호인단은 "불능에 가까운 재판을 왜 하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전범민중재판에 던졌다. "평화는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직면한 테러위협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자위권의 발동은 정당하다"고 항변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에 대해서는 "이라크 아이들도 안타깝지만 당장 내 아이가 똑같은 고통을 받을 것 같은데 가만있을 수 있느냐"며 "한반도전쟁 위협을 막기 위한 정치적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기소인단을 대리한 김칠준 변호사는 "한반도 전쟁이 누구에 의해 비롯되나?"고 반문했다. "북한의 남침위협이 아닌 조지 부시가 전쟁을 일으키려는 만행이 두렵다"는 게 "차라리 솔직하다"며 "전쟁놀음을 막는 것은 승복이 아니다. 평화애호, 부당한 침략에 대한 거부, 정의의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무기"라고 역설했다. 침략전쟁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방대한 자료가 막연한 반대를 '확신'으로 승화시켰다면, 이라크인, 베트남 참전군인, 현지에서 활동한 의료인 등의 증언은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과 절대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줬다. 법률전문가들은 국제법과 헌법, 국내법률의 위반임을 차분하게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2003년 3월 20일 미영의 이라크 공격은 침략범죄라는 것과 이런 침략전쟁에 가담하여 병력을 파견한 피고인 노무현의 행위가 침략범죄의 공범임을 확인했다.
따라서 △즉각 철군할 것 △이라크 민중에 대한 고문과 학살, 생존터전의 유린과 자원에 대한 수탈을 중단할 것 △인간다운 생존 보장을 위해 쓰여져야 할 소중한 재화를 침략전쟁에 소비하는 일을 중단할 것 등 피고인들 및 피고인들 국가에 대한 9개항의 권고를 했다.
"침략전쟁범죄와 평화에 반한 죄, 반인도적 범죄는 철저히 기록되고 가해자의 이름은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심판자들의 방문을 영원히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불의한 침략전쟁에 불복종할 권리는 세계인민의 권리"라는 선포는 철군이 이뤄지고 평화가 올 때까지 민중법정이 평화애호민중의 생활 그 자체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