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부자나라와 해야 관심의 대상이 되는 세상입니다"
세상의 시선이 온통 이라크전에 쏠려, 내전과 기아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현실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에 대해 탤런트 김혜자 씨가 자조적으로 한 말이다.
지난해 2월 시작되어 지금까지 3만 명 이상 '인간'의 생명과 120만 명 이상 사람들의 소중한 거주지를 앗아간 수단 내전은 이제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의 눈앞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통과된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은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 지역에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아랍 민병대 잔자위드를 한달 안에 무장해제 시키지 않을 경우, 외교·경제적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수단 내전의 복잡한 정치경제학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그 기원을 둔다. 수단 지역을 식민화할 무렵 영국은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북부의 아랍부족과 남부의 기독교·토착신앙 부족을 하나의 통치령으로 통합해 분쟁의 싹을 심어 놓았으며, 이후에도 계속된 제국주의적 분리통치를 통해 이 두 집단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심화시켰다.
195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정권을 잡은 북부의 이슬람 정부는 남서부 흑인들을 차별하여 이들이 사는 지역을 계속 낙후한 상태로 유지시켰고, 이 지역에서 발견된 석유와 우라늄 등의 풍부한 지하자원은 뿌리깊은 갈등의 화약고에 던져진 불꽃의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2003년 2월 다르푸르 지역의 반군인 수단해방군(SLA)은 중앙정부의 차별 정책에 반발하여 독립을 주장하며 봉기를 일으켰고, 정부측은 아랍 민병대 잔자위드에게 막강한 화력을 지원해 수단해방군 등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국제앰네스티 등의 보고에 따르면, 정부의 후원을 받은 잔자위드가 다르푸르 지역에서 저지르고 있는 전쟁범죄는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수단 공군의 도움을 받아 이 지역 곳곳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지역주민들을 한번에 수십, 수백 명씩 집단으로 학살하고 있으며, 강간을 전쟁무기화해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낙인찍고 비인간화함으로써 마을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5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서 만연한 콜레라와 이질로 인해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재난을 피하기 위해 이웃나라인 차드로 피난 중인 주민들 또한 매일 공격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으며, 부족한 지원 물품으로 인해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엔을 통한 국제적인 노력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이에 대해 신중론을 펴기도 한다.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계 신문 <알 쿠즈 알 아라비>는 "한달 안에 잔자위드를 무장해제 하지 않으면 수단 정부에 경제·외교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유엔의 결의는 아랍 국가들을 노리고 있는 미국과 서구의 또 다른 노력일 뿐이며, 미국은 이라크를 다뤘던 방식으로 수단을 다루고 있다"고 주장,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주변 아랍국가들은 아프리카연합(AU) 등의 지역기구를 통한 문제해결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국제앰네스티의 경우 유엔 결의안을 환영하면서도 그것이 지금의 끔찍한 인권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하고 본질적인 조치들을 실현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제앰네스티는 전쟁범죄에 대한 공정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위한 위원회 설립 등의 추가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계의 여러 인권단체들은 수단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일컬어 '이 시대 최대의 인도주의 위기'라고 말한다. 이 위기의 해결을 위해 이제 '국민'이 아닌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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