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하지만 야당과 당내 일부에서 제기하는 폐지 후 '안보공백', '처벌공백' 문제에 대한 대안에는 의견이 분분해 이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민간 자문위원의 의견을 청취하여 추석 이전까지 안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대안들이 하나같이 인권침해의 우려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공백은 없다
먼저 대체입법안이라는 '파괴활동금지법안'은 '이름만 바꾼 국가보안법'이거나 사실상의 '테러방지법'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국가보안법 7조의 '찬양·고무' 조항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애매 모호하고 자의적인 적용이 가능한 조항을 '파괴활동금지법안'에 두는 등 국가보안법이 갖는 독소조항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형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이미 형법 안에는 국가안보와 관련한 법 조항들이 충분히 들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열린우리당이 현재 검토하고 있는 형법개정안에는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할 목적으로 지휘통솔체계를 갖춘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를 처벌한다"는 조항을 넣어 국가보안법의 근간이 되는 제2조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이 조항은 북한을 간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 독소조항들의 뿌리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더욱이 현행 형법 제87조는 '국토의 참절과 국헌 문란에 대한 내란죄'를 규정하고 제114조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에 대해 처벌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도 국가안보에 해를 입히는 단체나 구체적인 활동은 이미 규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개정안의 다른 조항 역시 현행 형법으로 규율이 되는 부분을 이중으로 덮어 씌어 '형법의 국가보안법화'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형법은 민법과 함께 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법률이다. 반인권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데 있어서 연동시켜 '형법의 국가보안법화'를 추구한다면 이에 따른 인권침해가 더 광범위하게 일어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이 형법이라는 외피를 쓰더라도 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본질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도 국가안보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므로 굳이 형법을 보완할 필요는 없다. 다만 국가보안법을 폐지한 뒤에 정말로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형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으면 그때 가서 고치면 된다.
처벌공백은 당연하다
국가보안법으로 그동안 처벌한 것이 어떤 것들인가? 학생들의 민주적 선거로 구성된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해 몇 년씩이나 수배생활을 하게 만들고, 서점에서 버젓이 팔리는 저명한 교양서적을 이적표현물로 낙인찍어 보지 못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처벌을 없애는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목적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처벌 조항들이 사라져 '처벌공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형법에서 처벌하지 않아도 되는 즉, 처벌할 필요가 없는 기본적 인권에 해당하는 사항들을 범죄로 만들어 처벌한 것이 국가보안법이었고, 그 잘못을 바로 잡자는 것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진정한 이유다. 이런 목적을 망각하고 '처벌공백'을 없앤다고 국가보안법의 독소조항을 그대로 형법으로 옮겨 놓는다면, 몸에 박힌 가시를 아파서 빼려다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불안해하는 것과 같다.
암세포가 건강한 세포조직들을 죽이기 때문에 잘라내자는 것인데, 위에 있는 암세포를 떼어내서 뇌에 이식하여 똑같은 일을 하게 할 셈인가? 국가보안법은 아무 조건 없이 그냥 폐지하면 된다.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던 그 공백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채워질 때만이 국가안보도 지켜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