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주민들은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아직 그럴 수 없다. 사실상 핵폐기장 건설 계획이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백지화 선언'이 없는 상태에서 그동안 주민들을 속이며 사업을 추진해 왔던 정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9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는 정부가 핵폐기장 설치 추진과정에서 주민들과 해당 공무원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고 밝혀 핵폐기장 백지화에 쐐기를 박았다.
인권위는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소추방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 김인경 공동대표가 2003년 7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핵폐기장 설치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정보왜곡 △부안군수의 독단적인 핵폐기장 유치신청 △공무원 원전시설 견학 강제동원 등과 관련해 낸 진정에 대해 1여 년만에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주)는 사업추진 과정에서 △언론사 관계자 등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무리한 해외시찰 실시 △지역 언론기자 등에게 술 접대와 상품권을 제공하는 등 부적절한 방법 동원 △부지선정 과정에서 주민수용성 평가 왜곡 등의 인권침해 행위를 저질렀다.
또한 △자발적이라지만 가족까지 교육에 참여하도록 한 점 △가족이 가지 못하는 경우 그 이유를 제시하게 했다는 진술 △일률적으로 견학할 것을 지시 받았다는 진술 등을 근거로 부안군수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안군 소속 공무원 및 그 가족에 대한 견학을 강제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책사업은 국가가 단독으로 결정하여 추진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지만 앞으로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정책에 반영함으로써 인권침해 소지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정부가 핵폐기장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도 부지선정위원회의 활동이나 지난 4월 주민투표를 실시한 점 등을 이유로 들어, 주민들의 결정권과 적법절차 위반 관련 진정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 이현민 정책실장은 일단 환영의 뜻을 전하면서도 "인권위가 1년 이상 결정을 미뤄온 것은 국민의 인권을 책임져야 할 인권위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또한 기각 결정에 대해서도 "정부는 부지선정위원회 활동이나 구성에 대해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주민투표에서는 공무원을 동원해 방해하고 나섰다"며 "인권위가 어떤 근거로 이러한 판단을 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한편, 부안 주민들은 정부에 부안 사태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핵폐기장 백지화 선언을 요구하며 210일이 넘도록 부안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에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