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노동위원회(아래 서울지노위)는 7일 제일은행이 계약직 직원에 대해 일방적으로 제출한 계약만료 통보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금융권에서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해 '기간만료'만을 이유로 한 부당해고에 제동이 걸렸다.
제일은행에서 근무하던 870여 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은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해오면서 특별한 심사절차 없이 계약을 갱신해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제일은행은 3년에서 9년까지 근속한 계약직 창구직원들을 차례차례 해고해왔다. 은행측은 계약해지 통보를 하면서 불명확한 근거로 '인적 평정'이 나쁘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나이가 많고 근속년수가 오래된 계약직은 부담스럽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직 노동자들이 해고된 자리에는 신규채용된 또다른 '계약직' 노동자들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제일은행노조 비정규지회 서윤희 지회장을 비롯한 5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 오히려 더욱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는 뒷통수 치며 인간의 평등한 권리마저 빼앗아버렸다"고 호소하며 지난 8월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신고를 했다. 이에 서울지노위는 "피신청인(제일은행)이 신청인들과 매 6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한 것은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며 '부당해고 무효' 결정을 내렸다. 그 근거로는 △채용 전 면접과정에서 장기근로의 가능성을 고지한 점 △계약직직원운용준칙에 자동갱신 규정을 두고 있는 점 △계약직들이 최대 16회(8년)까지 계약을 갱신한 점 등을 들고 있다. 지노위의 이러한 결정은 계약직 창구직원들이 실제로는 정규직과 다름없이 상시적으로 고용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 지회장은 "은행이 이제까지 계약직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부당해고해 왔지만 이제는 그러한 횡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돼 계약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며 지노위의 결정을 반겼다.
이에 앞선 8월 24일 서울지노위는 우리은행이 계약직 직원에게 제출한 계약만료 통보 역시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2003년 소속 기관 비정규직 규모는 4만여 명에 달하고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41%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은행들이 계약직 노동자들을 지속적으로 부당해고한 올 한 해 우리은행은 8,507억 원, 제일은행은 85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등 사상최고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노위의 '원직복직' 결정에도 불구하고 해당 은행들은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중앙노동위원회로 사건을 넘겨 문제해결을 지연시키고만 있다. 은행이 '부당해고' 문제를 지연시키고 있는 만큼 부당해고된 노동자들의 고통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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