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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운동을 키우는 새로운 실험> ② 이라크 전범민중재판

풀뿌리 평화 운동을 꿈꾸며


법정형식의 운동은 가깝게는 조선일보 민간법정이 있었고, 몇 해를 거슬러 올라가면 5.18 민간법정도 있었다. 그렇다면, 2004년 진행된 이라크 전범 민중재판운동을 대안적인 인권운동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전쟁반대운동은 이라크 전쟁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전쟁반대운동은 발생하는 이슈가 있고 없음에 따라 심하게 굴곡을 그려오기도 했었다. 민중재판운동이 제안되던 당시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김선일 씨 죽음을 계기로 파병반대운동이 대중적으로 일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운동 또한 점점 힘을 잃어갔으며 추가파병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란 문제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이었다.

민중재판운동을 고민하던 사람에게 이 문제는 적어도 한국 반전운동의 실천양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슈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와 대국회 압박이라는 운동방식을 반복해 오다보니, 이슈가 없어진 시기에 풀뿌리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어떤 반전운동을 벌여야 하는지 기획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단체 간 연대라는 연대운동방식이 과연 개인들과 소모임들 간의 활동을 고무하고 소통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점도 고민의 화두였다. 2004년 추가파병이 이루어진 이후 가장 끈질기게 저항했던 이들은 오히려 박기범, 김재복 씨 등 개인과 공부방 같은 지역의 작은 모임들이었고, 이처럼 행동하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소통해나갈 수 있는 연대운동의 새로운 실험도 필요했다.

민중재판운동에서 기소장을 쓰는 운동이 가장 강조되었던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몇몇 전문가의 국제법적 지식에 기댄다면 더욱 훌륭하게 민중법정을 진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기소장을 쓰면서 전쟁을 다시 기억해내고, 직접 이라크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과정을 만듦으로써 반전운동의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이는 이슈 쫓기에 급급했던 기존 반전운동의 활동방식을 넘어, 우리의 요구를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직접행동의 한 전형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풀뿌리 대중이 자기 이유에 근거해 참여할 수 있는 운동형태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민중재판운동에선 전쟁을 부당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유랑' 활동을 내내 진행했다. 유랑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지역의 모임들이나 공부방 같은 소모임을 찾아가 이라크를 이야기하는 일, 혹은 거리와 대학가에서 문화적인 방식으로 시민을 만나나가는 일, 이라크인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전쟁 증언대회를 열었던 일 등. 이와 같은 활동의 결과, 예전에는 몰랐던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트고, 또 다른 반전활동을 기획할 수 있는 여러 개인들과 소모임들 간에 정서적인 연결망을 낳았다. 민중재판이 마무리된 지금 이 시점에도 그때의 연을 바탕으로 새롭게 운동이 제안되고, 또 몇몇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평화를 실천할 평화운동모임이 고민되고 있다는 것은 유랑이 남긴 좋은 성과 중의 하나다.

사실 민중재판운동이 간직했던 화두와 실험이 아주 새롭거나 거창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운동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대중과 직접 대면하면서 운동을 해보려 했던 실험이었을 뿐이었고, 그 만큼 한계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고발과 심판운동이 사회적으로 환기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는 점, 의욕을 가지고 실행위원회 구성과정에서 실험해보았던 개인참여에 바탕을 둔 수평적 조직형태가 운동의 책임성과 소통의 활성화라는 문제에 있어 여전히 한계를 보였다는 점, 풀뿌리 운동의 활성화라는 이 운동의 목표가 얼마나 성취되었는지 등등 곱씹어봐야 할 문제들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한계가 아닌 과제로 인식하는 이유는 '대중 속으로'라는 포기할 수 없는 이 운동의 정신이 여전히 뚜렷하기 때문이다. [손상열]

◎손상열 님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