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유혈 사태?
이번 선언을 두고 언론들은 일제히 "2000년 9월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즉 반 이스라엘 봉기 발발 이후 4년여 동안 이어져온 폭력사태를 종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표현에 따라 사실을 상당히 다르게 보이도록 할 수 있는 표현이다. 2000년 인티파다는 팔-이 관계가 평온한데 팔레스타인 측에서 무장공격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공격과 점령정책에 대해 저항하기 위해 벌어진 것이다. 현재 폭력 사태의 뿌리는 2000년 인티파다가 아니라 1948년 이전부터 현재까지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이다.
폭력 중단?
이스라엘은 아라파트 정부시절부터 끊임없이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의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노리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만약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뜻대로 하마스, 이슬람지하드를 비롯한 무장세력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면 그들로서는 강력한 저항세력을 제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만약 자치정부가 무장해제를 시도하다가 무장단체들의 저항에 부딪혀 내전이라도 일어난다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을 단번에 약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무장세력을 단속하라고 계속해서 요구하며, 이 요구를 거부할 경우 "테러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비난을 했고, 아라파트가 바로 그 비난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마스와 같은 조직들은 무장세력일 뿐만 아니라 정치세력이다. <한겨레>는 "가난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하마스는 청렴한 '구원자'이지만, 자치정부 인사들은 세금을 거둬가며 각종 원조물자를 가로채는 '도둑'으로 비친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마스는 먹을 것과 입을 것, 아픈 이들을 돌봐주는 잘 발달된 이슬람 자선조직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테러만을 일삼는 무자비하고 협상의 여지가 없는 비합리적인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야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단순한 무장해제뿐만 아니라 "테러기반(terror infrastructure)을 해체하라"면서 이들 조직 자체를 없애려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현 자치정부에 비해 팔레스타인 해방을 보다 강하게 내걸고 투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택
과거에도 여러 차례 평화협상이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행된 것이 없다. 그 첫째 이유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앞에서는 평화협상을 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계속해서 점령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평화에 대한 요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비록 제 땅의 80%를 빼앗겨도 독립할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외부와 차단된 채 쥐 죽은 듯이 살기를 바란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말하는 평화란 '점령된 평화', '침묵의 평화'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평화'와 '평화협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이 강요하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팔-이 관계에서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무력충돌이 중단될 때가 아니라 가자지구 봉쇄, 서안지구의 고립장벽, 활동가 암살, 주택 파괴 등 이스라엘의 각종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이 중단될 때만이 가능하다. 이번 휴전 선언이 한번의 '평화잔치'와 언론의 호들갑으로 끝날지 아닐지는 우리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될 것이다.
덧붙임
◎미니 님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