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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노조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 산재 불승인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조, 근로복지공단 규탄

4년간 계속된 노조탄압으로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하이텍알씨디코리아(아래 하이텍)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아래 공단)이 불승인 결정을 내려 물의를 빚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본부 앞에서 열린 산재불승인 규탄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

▲ 근로복지공단 본부 앞에서 열린 산재불승인 규탄 기자회견 및 결의대회



6월 2일 민주노총 등 41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구성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감시와 차별로 인한 집단정신질환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는 영등포 공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불승인 결정의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하이텍 노동조합은 "지난 4년 동안 계속된 회사 쪽의 고소고발 남발, 불법적 직장폐쇄, 부당 배치전환, 부당 해고 등 노조 탄압으로 인해 여성 조합원 13명 모두가 '불안증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 라는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며 지난 10일 공단에 산재신청서를 접수한 바 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사측은 △임금차별 인상 △상여금 차등지급 △구사대를 동원한 폭행 △부당해고와 직장폐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조를 탄압해 왔다. 또 2003년부터 CCTV를 통한 노동자 감시로 물의를 빚었으며 관리자들이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 주변을 몇 시간씩 맴돌며 노골적으로 감시하는가 하면, 지난 4월 7일에는 사측이 조합원 8명에게 각각 2억원 씩의 손해배상청구를 해 조합원들을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공대위에 따르면 공단 관악지사는 불승인 결정 후 구두통보를 통해 △질병은 인정되고 △노사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요인은 인정되나 △노사갈등으로 비롯된 문제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정할 수 없고 △2002년 직장폐쇄 이후 지금까지 사업장 내에서 벌어진 사건은 모두 사용자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쟁의행위 시기에 일어났으므로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노동자들이 산재승인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자들이 산재승인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합원 측 법률 대리인 유성규 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집단 따돌림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업무와는 별개의 일인 것이 자명하지만, 실제 업무과정에서 집단 따돌림이 존재했다면 업무상 재해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청구성심병원 조합원과 2005년 성람재단 조합원들이 낸 산재요양신청도 스트레스가 모두 노사갈등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당시 공단은 실제로 사업장 내에서 스트레스 요인이 있었는지만 판단해 승인 결정을 내려 이번 결정과 대조적이라는 지적이다. 유 노무사는 "(승인 과정에서) 쟁점은 실제로 집단 따돌림이 있었는지 여부일 뿐, 그 집단 따돌림이 어떤 원인으로 발생했는지는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결정 과정에서 공단이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사측의 주장을 단순 수집해 자문의사협의회로 떠넘긴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공단은 지난 18일 형식적인 현장조사와 19일 신청인들에 대한 단 한차례의 출석조사만 진행했을 뿐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20일에는 산재신청인 수보다 많은 17명의 회사 관리자와 비조합원들을 출석조사했으며 양쪽의 주장을 모아 26일 열린 자문의사협의회에 보고해 사실관계 판단을 자문의사협의회로 미뤘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유 노무사는 "법률관계 및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법률 전문가가 아닌 자문의들에게 떠넘긴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또 "산재신청에 있어서 사업주는 참고인일 뿐이며 이의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법률적 위치에 있지 않다"며 "조사과정 및 결정과정에 사용자의 의견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것도 산재신청자의 주장과 동등하게 반영한 것은 법규정으로 되어 있지도 않은 사용자의 '이의 신청권'을 사실상 인정 내지 보장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공단 본부에서 열린 공대위 대표단과 공단 관계자들의 면담

▲ 공단 본부에서 열린 공대위 대표단과 공단 관계자들의 면담



기자회견에 이어 진행된 공단 항의 방문에서 김용주 공단 관악지사장은 "질환의 원인이 사업자의 지배 관리로 인한 것인가 혹은 노사 관계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대해 결론을 도출할 수 없었다"며 "공단에도 CCTV가 있는데 이것이 노동자 감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둘러댔다. 이어 "공단은 사업주를 위한 기관도 아니고 근로자를 위한 기관도 아니"라고 못박았다.

공단의 불승인 결정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는 '심사청구'가 남았다. 이는 해당 기관의 상부에 재심사를 신청하는 것으로 60일에서 90일이나 걸리며, 같은 기관에서의 심사이기 때문에 결과가 대부분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청구에서도 불승인되면 행정소송만 남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승인 사례가 많으나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산재신청을 한 조합원들은 이 기간동안 개인적으로 치료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공대위는 앞으로도 공단 본사 앞에서 매일 항의집회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