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행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한 이웃 주민과 촛불행사장 가는 길을 함께 걸었다. 걸으면서 농촌 태생의 순박한 어머니인 그녀의 걱정을 들었다. 집회 때 보기도 하고 아무 일없이 마을에서 마주치기도 하는 낯익은 정보과 형사들이 어느 날은 "어이, 아줌마. 당신 우리한테 찍혔어. 한 번만 더 앞쪽에서 설치면 더 이상은 못 봐줘"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주민들에게 "나중에 당신들이 우리한테 아쉬운 소릴 하나, 우리가 당신들한테 아쉬운 소릴 하나 어디 두고 봅시다"라는 말도 경찰에게서 나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사태의 의미를 좀 더 주의깊게 바라보아야 한다. 710 당시 경찰 지휘관들은 처음부터 "철조망에 접근하면 상체를 가격해 논바닥에 쓰러뜨리라"고 지시했고 "방어하지 말고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정부가 710 대회를 무력으로 진압하겠다는 방침을 미리 세워두고 이를 실행에 옮겼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미국 또는 미군 문제와 관련한 정부 방침이라는 것은 결국 미국 정부의 정책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710 사태는 결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와 요청에 대해 경찰이라는 국가기구의 폭력을 빌어 충성을 증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요구는 결국 그들이 이른바 '사활적 이해'라고 규정하는 개념 속에 응축돼 있다. <인권하루소식>을 보는 독자들에게 생사가 달렸다는 미국의 이해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요구가 서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해 다시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것 같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한 정세의 영향으로 우리가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 그것도 제도화된 폭력 즉 국가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관리하면서도 관리능력을 상실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가지 일반적 과제를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일상화된 폭력의 세계화의 근원인 미국에 반대하는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는 이제 팽성에서도 익숙한 구호가 되었다. 머지않아 해외주둔미군 철수, 이라크 파병군 철수 요구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꿈은 아니다. 한펀 반미운동은 당연하게도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세계 인민과 세계 자체를 절망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세계화 경향을 역전시키는 지향을 갖는다. 주민 촛불행사장에도 방문한 한 시민운동가는 "내년에 제가 다시 오게 되면 농민 여러분들이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라고 말했다. 주민들도 활동가들도 다 함께 자기 일로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우리가 어떤 미래 사회를 준비해 가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사활적인 이해가 달린 문제다. 대안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이 곳에서 우리가 사는 방식을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팽성 들녘을 바라보며 생명의 땅에 대해 즐겨 말하고 찬미하지만 정작 생명을 살리는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반성하길 주저해왔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막아내는 일과 우리 땅을 건강하게 지키는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다른 예는 문화적인 것이다. '득점기계'로 비유되는 운동선수. '원샷원킬'로 비유되는 그의 기량. 폭력에 대항하는 평화적인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과제의 두 번째 측면이다.
710에서 우리가 본 것이 폭력만은 아니다. 710을 준비하고 치르는 사나흘 동안 스스로 자기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생각과 이념의 차이는 분쟁의 씨앗이 아니라 함께 모이는 동력이었다.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모여든 참가자들이 머리띠를 두른 칠순 할머니들이 내미는 환영의 손을 잡았고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간절한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에는 "우리는 총살을 맞아도 여기를 안 나간다"는 목숨 건 결의가 담겨있다. 이들을 잊지 않는 것이 싸우는 길이고 싸움에서 이기는 길이다.
덧붙임
두시간 님은 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