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닌 쪽에 가까울 것이다. 주민들의 저항이 계속될 것을 예상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한편으로 '더 나은 보상' 협상을 지속하면서, 최후의 강제수용을 예고하는 사전 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이 실행되고, 정부는 이미 주한미군 이전 부지로 특히 평택 지역에 모두 359만평의 땅을 올해 안으로 제공하기로 미국과 합의하고 악수한 상태다. 이 합의 결과는 삶의 터전에서 뿌리뽑히게 될 해당 주민들에게 사후에 우편으로 통지되었다. 싹수가 노란 정부에게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될 까닭이 거기에 있다.
나는 인권이란 자기결정권 곧 자신의 육체에 대한 자율과 통제권,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 또는 자신이란 특수한 개인이다. 세계 전체는 특수한 개인들로 구성되고, 그들은 서로 연관되어 통일된 체계로서 복합적 개인을 형성한다. 정부가 대상지역 주민들을 전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토지수용 결정을 발표했을 때 개인의 권리는 유린당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불면과 두통, 소화불량과 각종 통증, 그리고 예기치 않았던 죽음을 겪어오고 있다. 개인들의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원한 같은 정서들은 서로 마주치고 가로지르면서 마을 전체를 공포증 상태에 몰아넣었다.
스피노자가 말한 바에 따라 나는 인권[권리]이란 결국 역능[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그 자신의 자연[본성]의 법칙들에 의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것을 그는 지고의 자연권에 의해 하는 것이고, 자연에 대해 그는 역능만큼의 권리를 갖는다." 앞의 개인의 꿈 이야기에서 또 한 가지 진실은 주민들이 "우리가 알아서 막아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믿음은 의지로부터라기보다는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긍정적인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지역 주민들 개개인이 너나없이, 고향땅을 지키느냐 쫓겨나느냐 문제를 삶이냐 죽음이냐 문제로 치환해 받아들이고 있다.
권리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평택 팽성 주민들의 권리를 '주거권'으로 오해하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렇게 보는 것은 다만 '협소하게 보는 것'일 뿐은 아닌데, 왜냐하면 나로서는 전통적인 주거권 개념이 '보다 인간적인' 주거에 대한 요구를 정의한 데 그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삶, 그리고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팽성 주민들의 욕망은 정서적인 차원을 넘어서 이성과 윤리의 차원과 결합되어 있다. 그 이성은 "미군[군대]에게 비옥한 농토를 내어준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된다. 윤리는 "가라면 가 줘야지"라는 말로 긍정적으로 표현된다. 이미 1960년에 김수영 시인이 말했듯이 우리도 행동해야 한다. 다만 석양에 비쳐 눈부신 이 곳 평택 들판을 잊지 않고 그렇게 해야 한다. "가다오 나가다오 이유는 없다."
덧붙임
두시간 님은 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