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여성작가 아룬다티 로이를 대표로 한 12명의 배심원단이 꾸려졌으며, 증언과 변론을 위해 54명의 증인과 변호인단이 모였다. 한국의 김재복 수사,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 이브 엔슬러, 세계사회포럼의 발기인인 프랑소아 우타르등이 배심원단에 참여했고, 유엔에서 이라크 담당 복지조정관을 하다가 환멸을 느껴 사임한 데니스 할리데이, 전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 단장이었던 한스 폰 스포넥, 평화를 위한 이라크 참전용사 모임의 팀 굿리치등과 이라크의 활동가들이 증언대에 올랐다.
한국참가단은 김재복 수사님을 비롯해 15명이었다. 재판에 참여하는 것 뿐 아니라 전시와 퍼포먼스등을 통해 한국에서 진행한 풀뿌리 기소인 운동과 한국재판의 내용을 알리고자 했다. 참가단의 일원인 최병수 화가의 그림을 중심으로 한 전시와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증언
재판이 열린 톱카피 궁안의 임페리얼 민트(Imperial Mint)는 날마다 수백명의 사람들로 꽉 찼고, 증인들의 고통, 분노를 담은 증언들이 이어지는 현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었다. 관타나모 등 미국이 저지르고 있는 불법구금에 대해 증언을 한 미국여성은 이라크인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라크인의 잔혹한 일상은 너무나 아팠지만 우리가 눈 돌리지 않고 똑똑히 보아야 할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 모든 눈물들을 기억해야 했다.
이라크인들은 이스탄불에 오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재판장 주위에 그림을 전시했던 이라크 화가 살람 오마르씨는 디아르바카르 공항(터키 남부의 쿠르드지역)에서 2일 동안 억류되어 있었다. 억류된 이유는 첫째, 이라크인이라 테러의 위험이 있다는 것과 둘째, 그의 그림에 배경으로 칠한 흰색 아크릴 물감이 코카인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2일 동안 감금된 후에야 풀려나 재판에 참가한 그는 이라크에서 이미 많이 겪었던 일이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판결
국제전범재판은 미국과 영국정부를 전쟁범죄자로 판결했을 뿐 아니라, 이에 동조하고 협력한 모든 정부가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더럽고 추악한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이라크 민중의 삶의 권리를 침해한 공모자이다.
또한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에 대한 유엔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 전쟁으로부터 이윤을 얻은 다국적 기업 총수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핼리버튼, 벡텔, 보잉 등의 기업들에 대항하는 행동을 개시하고, 이라크를 고소해서 '보상금'을 받아낸 토이저러스, 켄터키프라이드치킨, 네슬레, 펩시 등에 대항한 행동을 제안하였다. 저항행동은 사무소 폐쇄, 불매운동, 주주에 대한 압력과 같은 직접행동의 행태를 취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배심원단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판결문을 재판이 끝나고 6월 27일 기자회견에서 낭독했다. 참가자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판결에 환호하고 함께 싸워나갈 것을 외쳤다.
살람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지난해 한국 전범민중재판의 증인이었던 살람 가드반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재판의 공식 증인은 아니었지만 한국 참가단이 이스탄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힘겨운 걸음을 했다. 재판 내내 함께 했을 뿐 아니라 한국참가단의 전시와 퍼포먼스등에도 참여했다. 한국 재판장에서 "이라크에 꽃을 들고 오라"며 눈물을 흘리던 살람은 그동안 이라크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쏟아내며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는 지금 이라크에서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데 '새로운 전쟁', 즉 내전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재판장에서 살람은 "이라크인들 간의 갈등은 없다. 종파에 관계없이 점령에 맞서 싸우고 있고 미국이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라고 했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양상이 격해지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 심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시아파의 공격으로 그의 수니파 친구가 죽은 일도 있었다. 오랫동안 평화롭게 공존해왔던 사람들인데 점령을 지속시키기 위해 분열을 조장하고 있고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살람은 한국에서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는 전범재판을 보며, 이라크에서도 이 같은 전범재판을 꼭 치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나 위험하고 힘든 일이지만 이라크인들의 손으로 전쟁범죄자들을 심판해야 한다며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과 연대를 당부했다. 공식적으로 이야기된 것은 아니고 살람의 구상일 뿐이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스탄불의 이 재판이 정말 마지막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여전히 현실감이 없지만 이라크인이 겪고 있는 잔혹한 일상에 대한 심판을 이라크에서, 이라크인의 손으로 해야 한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열린 재판의 경험과 민중들의 싸움이 이라크에서 전범재판을 만드는 거름이 될 것이다.
이스탄불에서 재판이 열리는 시간에 한국에서는 김선일 씨 1주기 추모 반전집회가 열렸다. 김선일씨를 죽게 한 노무현정부를 민중의 이름으로 기소한 것과 같이, 참가자들은 각 정부를 전쟁범죄자로 기소하고 그들이 우리의 대표가 될 수 없음을 천명하였다. 그들은 전쟁범죄자일 뿐이며, 전 민중의 양심으로 그들을 심판할 것을 외쳤다. 우리는 3일간의 수많은 증거와 증언들을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 빨리 이라크인들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씻을 수 없는 범죄가 지속되지 않기 위해 미국은 점령을 끝내고 이라크에 있는 모든 군대는 철수해야 한다.
덧붙임
진재연 님은 사회진보연대 정책편집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