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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매향리에 피어오른 매화 향기

반세기 만에 미군 폭격장 폐쇄…직도로 옮겨가는 악몽

폭격의 황색 깃발 내려! 평화의 녹색 깃발 올려!

이제 매향리에서는 더 이상 미군 전투기들의 폭격개시를 알리는 황색 깃발을 볼 수 없게 됐다. 1951년 미 공군 사격장으로 조성돼 1955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군전용 폭격 연습장이 된 매향리 사격장이 12일 낮 12시를 기해 폐쇄된 것. 이로써 54년 동안의 미군 폭격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매향리에도 드디어 평화가 찾아왔다.

그동안 매향리 주민들은 날마다 폭탄을 퍼붓는 전투기들의 폭격 훈련으로 인해 소음과 난청,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이로 인한 자살, 임산부의 유산 등이 계속 됐다. 또한 오폭 사고와 불발탄 폭발 등으로 인한 피해 역시도 주민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던 주민들은 분노했고 1988년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려 적극적인 투쟁을 벌여나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한 진압 뿐,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2000년 5월 엔진고장을 일으킨 미군 전투기가 마을에 폭탄을 투하하면서 주민 6명이 다치고 농가 7백여 가구가 피해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매향리 투쟁의 불길은 다시 타올랐다. 전사회적인 관심과 연대투쟁으로 결국 2000년 8월에 육상 사격장은 폐쇄되었고, 2004년 3월에는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폭격소음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도 매향리 앞바다의 농섬 해상사격장에서는 폭격이 계속 되었고, 매향리 주민들의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매향리 주민들의 지치지 않는 투쟁이 결국 오늘의 폭격장 폐쇄라는 쾌거를 가져왔다.

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 깃대에는 폭격을 알리는 황색 깃발 대신 "매향리 평화마을"이라고 적힌 녹색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대책위와 마을 주민들은 앞으로 평화공원과 평화박물관이 들어서는 평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제 매향리는 그 이름 그대로 매화 향기 넘쳐나는 평화의 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폭격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옮겨갈 뿐

그러나 한편으로 매향리에서 폐쇄된 폭격장은 엄밀한 의미에서 '폐쇄'되는 것이 아니다. 매향리의 폭격장은 전북 군산시 옥도면에 위치한 직도로 옮겨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직도는 서해안 끝에 위치한 섬으로 기암절벽과 갈매기 서식지로도 이름난 섬이었으나 1971년부터 한국 공군이 사격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수차례 폭격을 당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미 공군의 사격장까지 이전될 예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매향리 폭격장 폐쇄가 결정되고 대체부지를 찾던 국방부와 미군은 강원도 태백지역의 필승사격장과 전북 군산지역의 직도 공군사격장을 물망에 올렸다. 이에 대해 태백지역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발하자, 국방부와 미군은 직도가 이미 30년 이상 폭격장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무인도이기 때문에 민원제기가 덜 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직도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도 주변의 유인도로는 말도(14가구 60여명), 방축도(65가구 160여명), 명도(31가구 80여명) 등이 있는데, 이 곳의 주민들은 사격장에서 밤낮없이 진행되는 폭격훈련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 또한 황금어장으로 알려진 직도 주변에서 조업을 할 수 없도록 제재를 받아 어민들이 받는 어업피해도 상당하다. 어민들이 직도 주변에서 어업을 하는 경우 전투기가 조명탄을 쏘거나 배 옆으로 수직으로 내리꽂는 식의 비행을 하면서 어민들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997년, 1999년, 2000년에는 불발탄 사고로 인해 조업하던 어민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격장의 직도 이전과 관련하여 지난 3월말 전북민중연대회의,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 전북통일연대, 민주노총전북본부 등 90여개 전북지역시민사회단체들은 '군산직도 폭격장 폐쇄를 위한 전북시민사회단체 대책위'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매향리에 평화를! 직도에 평화를! 이 땅에 평화를!

매향리 폭격장 폐쇄는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싸움이 일구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군기지와 미군 폭격장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은 채 다만 자리를 옮겨갈 따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건강하게, 안전하게, 평화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이 그야말로 '상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