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공대위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국정부가) 원폭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정부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채, 원폭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제반대책을 마련한 전례가 없으며, 원폭피해자들의 피해규모와 생활실태 등 기본적인 실태조사 마저도 단 한차례 시행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정부가 책임지고 풀어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원폭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국한하고자 하는 의도이며…(국가권력의) 명백한 폭력행위이자 인권유린 행위"라고 비판했다.
농성자들은 한국정부와 국회에 대해 △일본정부에 손해배상 촉구 △한일협정 재협상 △원폭피해자 실태조사와 지원대책 마련 △원폭피해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기다리다 지친 피해자들
이미 2003년 8월 '원폭2세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인권위에 낸 진정서를 통해 △전국적 실태조사 △체계적인 의료·생계지원체계 마련 △일본과 미국 정부에 대한 배상 요구 등을 한국정부에 정책권고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인권위는 지난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의뢰해 실태조사를 실시했을 뿐 한국정부에 대한 정책권고는 2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뤄두고 있다.
지난 2월 인권위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폭피해자 2세 남성은 같은 또래의 일반인에 비해 △빈혈 88배 △심근경색·혐십증 81배 △우울증 65배 등으로 높게 나타났다. 여성의 경우도 △심근경색·협심증 89배 △우울증 71배 △유방양성종양 64배 등 마찬가지였다. 인권위 관계자는 "정책권고를 준비하고 있지만 워낙 축적된 자료가 없다보니 가까운 시일 내에 결정하기는 힘들다"며 "10월, 11월 정도에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폭공대위 김준현 국장은 "대규모 조사는 아니었지만 실태조사 결과 피폭 영향이 원폭2세에게 대물림 됨을 시사하는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며 "인권위가 적극적인 의지만 있다면 한국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권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법안 통과 여부 불투명
지난 8월 4일 조승수 의원(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원자폭탄 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아래 특별법안)은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위원회 설치 △피해자와 직계존속에 대한 의료지원 및 생활지원 △진상조사 및 기념사업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안은 21일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법안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인 상황이다. 조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법안을 담당하게 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일본정부가 책임질 일이라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도 10월에 제출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부모의 피폭과 원폭피해자 2세이 질환의 인과관계는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며 원폭2세는 검토대상에서조차 제외하고 있다.
원폭공대위는 특별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고 31일에는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