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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신동혁 씨 거짓 ‘증언’과 북한인권보고서(20150211)

‘거짓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은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실태에 대해 주요하게 발언해온 북한이탈주민 신동혁 씨의 거짓 ‘증언’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에서 ‘가장 극악하고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다’고 알려졌던 14호 수용소(소위 ‘정치범 수용소’)에서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했다는 신 씨의 이야기는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신 씨와 같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주요한 토대로 삼아 2013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 따라 유엔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립하였다. 그 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1년여의 활동을 거쳐 2014년 2월 ‘북한 정부 당국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침해를 반인도 범죄’로 규정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는 권고를 담은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발표 후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빠르게 이어졌다. (당사국의 요청이 있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정을 통해서만 ICC 회부가 가능하기에) 안보리가 북한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유엔 인권이사회(2014년 3월)와 유엔총회 3위원회(2014년 11월)에서 채택되어 12월 18일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가결되었고 최종적으로 12월 22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정식의제로 채택되었다. 이로써 북한인권을 증진시킨다는 ‘아름다운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물리적․군사적 개입까지 가능할 수 있는 길이 공식적으로 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쟁 전 이라크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개인의 ‘일부’ 오류로 말할 수 없는 이유

사실 그동안 신 씨가 구술해서 쓰인 책은 그 내용의 진위에 대해 꾸준히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작년 10월 북한은 신 씨의 증언이 거짓이라며 반박 영상을 올린 뒤, 이러한 거짓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보고서 및 이를 반영하여 이루어진 결의안 채택은 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월 신 씨가 일부 내용이 잘못됐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잘못됐다고 인정한 일부 내용은 ‘일부’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중요도가 너무 커 보인다. 번복의 핵심이 바로 신 씨가 감금되어 겪은 일들의 주요 근거지인 14호 수용소에서 18호 수용소로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14호 수용소에서 탈출한 유일한 생존자’로서 14호 수용소의 비참함에 대해 유일한 권위를 가지며 그의 발언이 미친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가 진술했던 전반적인 내용 모두가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 씨에 이어 국제사회에서 새롭게 ‘북한인권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는 박연미 씨의 증언 또한 신뢰성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북한인권운동에서 주요하게 활용해온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왜 거짓되거나 과장된 증언을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이유 또한 제기되고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 의학적 진단을 내리기도 하고, 언어 차이에서 발생된 문제라는 설명을 하기도 하며, 자신이 겪은 일을 극대화하면서 얻으려는 이익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와 함께 신 씨 등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당사자가 직접 해명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이번 사건을 두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에 있어 ‘거짓말쟁이’가 된 북한이탈주민 개개인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북한이탈주민이 언제든지 양산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로 북한이탈주민의 ‘증언’이 현실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이 놓인 위치

미국을 위시해 북한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주요 국가들은 ‘북한인권’을 대북 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그 내용의 주요한 근거로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활용해왔다. 이러한 조건은 북한이탈주민들 사이에서조차 신뢰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인권에 대한 증언이 넘쳐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일부 북한이탈주민들은 이러한 ‘증언활동’으로 돈을 벌고, 국제무대로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국제사회의 ‘자유’를 위협하는 ‘최악’의 국가로 지목한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이 소비되는 구조는 ‘증언시장’에서 더 잘 팔릴 수 있는 증언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북한인권에 대해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자극적인 증언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증언시장’에서 수요에 맞춘 공급자 역할이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강요되는 현실과 맞닿아있다.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놓인 현실이기도 하다. 종편 채널에서는 뉴스, 시사정보, 예능 등 각종 프로그램에 경쟁하듯 북한이탈주민들을 적극 출연시키고 있다. ‘미디어에 나타난 탈북자 연구 보고서’(한국언론진흥재단, 2014년 8월)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을 출연시킨 종편 프로그램이 다룬 컨텐츠를 분류한 결과 생활정보, 체제비판, 지도층 정보에 관한 것이 두드러졌다. 북한을 접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조건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경험담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북한은 북한인민들에게 느끼는 친근감과 함께 독재-세습 정권으로 ‘악마화된’ 북한체제라는 상반된 인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공․반북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은 북한에서, 그리고 북한이탈 과정에서 개개인이 겪었던 경험이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다양한 증언이 불가능해지는 구조로 이어진다.


문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소비하는 방식과 주체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사회적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탈북민 실태조사 및 사회조사 결과(통일부/남북하나재단)에서처럼 같은 일을 해도 임금 수준은 2/3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거나 ‘탈북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기 힘들다거나 하는 등의 상황은 전형적인 소수자들의 상황에 가깝다. 그리고 ‘북한인권의 증언자’로 안보교육시장에, 종편시장에 호출되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북한체제를 비판하는 선전도구로써 가치 있는 경우로 한정된다. 이러한 조건들이 맞물리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을 소비하는 방식과 주체들이다. 이번 사건이 진실과 거짓 공방을 넘어, 적대의 벽 앞에서 부유할 수밖에 없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존재와 조건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오는 17일 미국에서 북한인권보고서 발표 1주년을 기념하는 대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 마이클 커비 전 COI 위원장은 “(신 씨 개인 증언의) 일부 오류일 뿐 보고서의 결론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일축하고, 북한인권운동 진영은 최악의 인권침해 국가로서의 북한은 변함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COI의 권고사항 이행을 위한 유엔 북한인권 한국사무소가 내달 설치될 예정이다. 

북한의 ICC 회부가 안보리의 정식의제로 채택되면서 북한에 대한 물리적․군사적 개입 가능성이 공식화되었다. COI 등 유엔의 북한인권체제는 논란이 된 거짓 ‘증언’을 개인의 과오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인권’을 내걸며 진행해온 일련의 흐름이 전쟁 위협으로 구체화된 모순적 상황에서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인정하고,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