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이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연설한 내용이 한국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는 셔먼 차관의 연설 이후 국내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며 정부에 엄중대응을 촉구했고 시민사회단체는 미국에 과거사 발언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셔먼 차관의 연설 이후 한국 정부는 외교부 정례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정책 변화가 아니라며 서둘러 해명했고, 미국 국무부 부대변인이 “특정인 혹은 국가를 의도한 말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한국사회의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3월 5일 주한 미국 대사가 피습을 당했으며, 워싱턴타임스는 미 관계자들이 셔먼 차관의 발언이 영향을 끼쳤는지를 포함한 공격 이유를 탐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북아시아의 역사, 잊힐 수 없는 민중들의 고통
물론 민족주의가 동북아시아 평화에 영향을 미친 점은 사실이다. 이는 동북아시아의 근대 역사에서 각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전쟁과 전후 처리의 여파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한반도는 식민지배 하에서 위안부, 학살과 착취의 고통을 겪었으며, 중국 또한 남경대학살 등 민중들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었다. 또한 전후 처리 과정에서 전승국들에 의해 민중들의 고통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으며, 일본은 호시탐탐 다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민중들이 그때의 고통을 잊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했고, 때로는 정치지도자에 의해 현재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치지도자에 의한 민족주의의 발현이 지금을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과거이자 현재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친일청산조차 이루지 못했으며,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 따라 일본과 '미래'를 함께 할 관계를 요구 받는 상황에서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와 살아 있는 피해자의 존재는 잊을 수 없는 문제이다.
또한 셔먼 차관이 "한국인들과 특별히 중국인들은 일본의 국방정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은 일본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위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논쟁을 벌여왔다 역사책의 내용이나 심지어는 바다의 이름(동해-일본해)에 대해서도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이해할 만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는 연설은 위와 같은 갈등이 현재 동북아시아에 어떤 위협을 주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전후 만들어진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특히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여 자위대를 군대로 격상시키고, 교전권을 확보하려 한다. 일본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자위대를 파견하였으며, 대외적으로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받으려 하는 모습에 동북아시아의 긴장 기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 역사 교과서 개정이나 동해-일본해 명칭에 대한 갈등은 이와 같은 일본의 대외 팽창정책에 대한 긴장감이기도 하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 침략전쟁을 축소시키고, 군위안부가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인 것처럼 실리는 문제는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사인식과 평화에 대한 문제이다.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해 제대로 반성과 사과,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조차 하지 않은 일본이 다시 과거로의 회귀를 시도할 때 침략전쟁의 피해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와 민중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웬디 셔먼의 발언이 의미하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
동북아시아는 미국에 있어 중동과 함께 주요 위협지역이다. 미국을 경제적·군사적으로 위협하며 부상하고 있는 중국, 푸틴 정권 하에서 다시 위협국으로 부상한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지역은 어떤 순간에 미국에 직접적 위험지역으로 바뀔지 모른다.
이 상황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시아 전략에 최대 과제는 중국을 견제하는 일이다. 미국이 2013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지지하고 일본 재군사화에 대해 눈을 감은 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일본을 끌어들인 맥락, 싸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추진 등은 모두 미국의 이익을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을 자극해서 얻을 이익이 없는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거부했으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지 않았다. 따라서 미 행정부는 한·미·일 관계 개선이 필요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와 같은 연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즉 이들이 말하는 평화는 중국을 견제하며 얻는 미국의 평화일 뿐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아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바란다며, 미사일을 배치하고 일본의 군사력을 높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온전한 반성 없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없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이 맞대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근대사회 이후 언제나 전시체제였다. 일본 제국주의 팽창 이후 한반도는 침략과 식민시대를 거쳤으며,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전쟁을 치렀다. 해방 후 한반도는 한국전쟁을 거쳐 수십 만의 민간인이 사망하였으며, 한국 전쟁후 미·소 냉전의 최전방에 있었다. 그리고 북핵 위기와 동북아시아 국가간의 갈등은 여전히 이 지역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미국이 무엇을 하였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다. 셔면 차관의 연설은 자신들이 이 문제에 있어 오직 중재자의 역할을 지닌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현대사에 미국은 주요 행위 주체였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전쟁 패전국인 일본이 아닌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였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 전쟁 피해당사국인 남·북 정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배제되었고, 결국 일본과 아시아 국가간의 피해배상 문제를 강대국들이 결정하였다. 결국 지금의 한·중·일을 둘러싼 민족주의적 갈등은 단지 각국의 정치지도자가 만들어낸 갈등이 아닌, 전후 냉전체제에서 보여준 미국의 행위가 함께 만들어낸 문제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누구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길 원하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은 100년의 시간동안 평화보다 위협과 공포의 시절을 살아왔다. 이와 같은 위협과 공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확산되었는지 우리는 봐야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사회의 과오 또한 살펴야 한다. 한일협정을 통해 민간인 피해에 대한 보상과 사과조차 받지 않고, 민족주의를 활용해 국가주의를 강화할 뿐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은 한국 정부와 식민지 시대를 옹호하는 이들은 위안부 생존자가 53명만이 남아있는 지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