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국가인권위의 ‘북한인권’ 정책, 뉴라이트의 앵무새가 되었나
인권위 <북한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 보고서의 문제점
국가인권위원회(현병철 위원장, 아래 인권위)가 20일 <북한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인권위 발표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2006년 <북한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입장>을 발표한 그 인권위가 맞나.
인권위가 이번에 발표한 <북한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고서의 전체 내용과는 달리 ‘북한정치범수용소 실태조사’라는 보고서 제목을 통해 선정적인 내용만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의 실제 내용은 ‘정치범수용소’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수용시설, 강제송환, 형사법제 등과 같이 제목과는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조사방법도 정치범수용소 생활을 경험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면접조사는 17명에 그치고, 강제송환에 대한 32명의 면접조사와 정치범수용소의 간접 경험에 대한 322명의 ‘인식’ 설문조사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는 인권위가 ‘정치범수용소’라는 ‘북한인권’ 공세의 선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아이콘을 부각시킴으로써 일종의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권개선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침착하게 모색하기보다는, ‘낙인’과 같은 방식의 공격으로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박해왔던 보수단체들의 활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둘째, 새로운 내용이 없다. 기존의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증언을 반복하고 있고, 특정한 정치 성향을 갖는 단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치범수용소 5곳 운영’, ‘정치범수용소 수용 정치범 20여만 명’ 등의 주장은, 이미 2002년 통일부, 2003년 미 국무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실려 있는 ‘아주 오래된’ 증언들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러한 보고서들도 ‘김정일 정권 붕괴’를 목표로 한 보수적인 성향의 ‘북한인권’단체들이 주장해온 내용이 반영된 것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 북한이탈주민 난민 지위 획득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 과거 서독의 ‘잘츠기터 중앙문서기록보존소’를 모델로 한 ‘북한인권침해기록보존소’ 운영 등에 대해서도 국내외의 극우보수 성향의 인사·단체들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국가인권위는 북한인권 사안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해왔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는 ‘전체주의’, ‘(북한의 형사절차제도는) 가식’, ‘북한정권을 압박’ 등과 같이 거친 용어를 사용하며 강경한 대북 대결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 보고서가 이전의 국가인권위와 같은 곳에서 나온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셋째, 국가기구로서의 발언이 갖는 무게감과 역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가령,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용 정치범 20여만 명’ 주장은 민간단체가 하는 것과 국가기관이 하는 것의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국가기관의 주장은 국가의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권위가 공개한 보고서 요약문 내용 곳곳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과 사실이 구분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사실인 것처럼 단언하고 있는 내용들이 많이 보인다. 국가인권위가 책임질 수 있는 내용인가.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현병철 위원장 체제 이후 국가인권위 운영의 파행과 친보수 행보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인권에 대한 경험도 의지도 없던 현병철 위원장 취임과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인권위의 북한인권 사업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이후 인권위는 눈에 띄게 보수 ‘북한인권’단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심지어 인권위는 지난 해 말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기해 뉴라이트 계열의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 ‘대한민국 인권상’을 수상해 ‘인권’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보고서는 인권위의 이러한 행보의 결정판이자 출발점으로 보인다.
만약 우려하는 바와 같이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가 운영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북한 당국은 이 상황을 심각하고 중대하게 받아들여 책임있게 개선에 힘써야 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와 원칙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인권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하다. 압박과 대결의 방식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의 방식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2010년 1월 20일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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