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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전교조를 지켜내는 것을 넘어

9월 23일 정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에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규약을 10월 23일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노조설립신고를 반려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전교조는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9월 26일부터 단식농성을 시작했고, 정부 요구안 수용 여부를 10월 16~18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최종결정하기로 했다. 전교조는 조직 전체를 투쟁본부 체계로 전환하면서 정부의 요구안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다. 정부와 전교조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와는 별개로 노동조합이나 전교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이미 해고된 사람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게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해고자 몇 명을 지키기 위해 노조설립이 취소되는 상황까지 감수하려는 전교조의 태도가 고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로 6만 명 중 9명의 해고자를 탈퇴시키려고 전교조와 전면전을 벌이려는 정부의 입장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누구와 어떻게 모일 것인가

해고자가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나 해외 사례, 법원의 판례 등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당사자들이 상호 간 공동의 목적을 위해 결성한 조합 구성원 자격을 조합원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왜 정부나 기업, 법원과 같은 다른 이들이 결정하는지 말이다. 모든 형태의 결사는 그 목적과 형태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맺어지고 그에 따른 구성원의 자격조건을 규정할 수 있지만 오로지 구성원들의 ‘자유’ 의지에 따라서 자주적으로 결정될 수 있을 따름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드는 모임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노동 3권이라고 일컬어지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사실 노동자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요구사항 쟁취를 위해 사측과 교섭할 수 있다는 일련의 행위를 권리라는 이름으로 나눠놓은 것에 불과하다. 특히 노동권은 어떤 소유나 자격에 대한 권리를 통해 자동으로 청구되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행동할 권리’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 3권을 통한 사회적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다. 누구와 어떻게 모일지는 바로 당사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며, 이는 어떻게 싸우고 무엇을 요구할지와 직결된다.

최근에 노조설립신고를 마친 청년유니온의 경우 구직자는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설립신고가 반려되어왔다. 만약 청년유니온이 노동부의 반려를 수용해 구직자를 조합원에서 제외했다면,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청년층을 포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청년실업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전교조의 경우, 9명에 불과한 해고자가 전교조 운동에서 갖는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전교조는 시작부터 1,500명가량의 대규모 해고자(당시 해직교사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을 정도로)를 낳으며 출발했다. 10년 동안 수많은 해고자들과 함께 법외노조로서 참교육운동을 펼치며, 교육현장을 지켜왔다. 98년 정리해고, 파견법 등이 통과되며 비정규직, 기간제, 파견노동자 등이 급증하는 가운데 전교조는 교원노조법을 통해 합법 노조가 된다. 사교육시장의 엄청난 팽창과 사회전반을 강타한 노동시장 유연화 속에서 앞선 법외노조 시기의 참교육운동과는 사뭇 다른 정규직 교사들 중심의 조직 모습을 띄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전교조는 7차 교육과정, 네이스(NEIS), 일제고사 등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맞선 싸움들을 펼쳐왔다. 또한, 시국선언, 사학비리반대투쟁, 진보교육감, 진보정당 운동에 함께 하며 전교조가 사회 속에서 호흡하며 걸어가야 할 길을 지켜왔다. 해직교사들 대부분은 교원으로서 금지된 위와 같은 행위들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전교조가 정부의 협박에 굴복해 규약을 개정한다는 것은 단지 몇 명의 조합원들을 내치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그걸 알기 때문에 정부도 6만 명 중 9명을 내보내라며 전면적인 탄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원노조가 아닌 교직원노조

정년 보장, 비교적 자율적인 노동조건에 방학까지, 2000년대 들어 교사는 각광받는 직업이 되었다. 엄청난 교육대 입시경쟁, 임용고시 경쟁률이 보여주듯이 정규직 교사가 되는 길은 점점 어려워졌고, 정부는 기간제 교사, 교과별 전문 강사 등을 채용하며 비정규직 교사 비중을 더욱 늘리기 시작했다. 교육부 집계로 교사 10명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런 시대상황을 반영하듯 사람들에게 전교조는 참교육보다는 안정적인 정규직 교사들의 노동조합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교사뿐만 아니다. 학교에는 수많은 직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식당 조리, 교무보조, 행정업무, 건물관리, 청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동자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그중에서 교사는 위계의 상층에 있으며, 정규직 교사는 더할 나위 없다. 그래서 전교조는 더 왼쪽으로, 아래로 가야 한다.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낸 노동자 분할과 적대의 선을 먼저 뛰어넘어야 한다. 정부가 해고자와 비해고자를 나누어 분할하고 적대하려 한다면, 전교조는 더욱 과감하게 교원과 비교원의 구분을 뛰어 넘는 게 필요한 시기는 아닐까? 89년 전교조가 출범할 때 한국 사회에 참교육의 함성을 울렸고, 그에 호응해 수많은 이들이 함께 했던 것처럼, 조직적 위기를 맞은 지금 전교조의 싸움이 한국 사회에 어떤 울림을 주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합법노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노조인지가 중요하다.

누구와 어떻게 모일지, 즉 해고자와 함께 조합을 구성할지 여부가 전교조가 어떤 요구와 싸움을 해나갈지를 결정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교원노조’가 아닌 ‘교직원노조’를 만드는 싸움을 시작한다면, 학생들에게 차별과 적대에 맞서는 진정한 연대와 우애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