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간의 단식농성, NEIS 공대위를 구성하다
박래군 / 기획사업반 상임활동가
이번 농성은 비와 싸우는 노상 단식농성이었다. 단식 농성 열흘 동안 절반은 비가 내렸다. 비옷을 뒤집어쓰고, 명동성당 들머리를 지킬 때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외에 어떤 일도 불가능했다. 들머리 계단 하나씩 자리를 만들어 침낭을 뒤집어쓰고, 모기의 집요한 공격에 새벽녘이면 저절로 잠이 깼다. 나는 농성 중에 밤 11시면 취침을 하고, 새벽 5시면 일어났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 오전 9시가 다 되었다.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 앉아서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다 받아야 하는 때도 있었고, 장대비를 맞으면서 버텨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낮 12시, 오후 5시면 명동 거리로 내려가 홍보물을 돌렸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되는 길거리 특강과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집회, 그리고 평가회의를 끝으로 오후 9시면 일과가 끝났다. 그런 와중에도 ‘네이스’ 대책 회의는 거의 매일 열렸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단식농성을 해 본 사람이라면 성당 바로 맞은 편 중국집에서 흘러나오는, 짜장 볶는 냄새가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알 것이다. 단식 몇 일째면 배고픔도 잊고, 단식할 만한 상황이 오게 된다. 그러나, 그 중국집의 짜장 냄새는 잊고 있던 배고픔을 들쑤신다. 그럴 때면 우리도 효소물과 소금으로 배를 채우면서 한 끼의 식사를 하곤 했다.
효소물과 소금으로 하루하루 버티면서 우리가 주장했던 것은 ‘네이스 반대, 정보인권 수호’였다. 사실 단식농성을 하려면 6월초 정부가 전교조와의 합의를 뒤집었을 때 들어갔어야 했다. 전교조 교사들이 연초부터 단식농성에 삭발, 집회 등을 통해서 어렵게 네이스 문제를 정보인권의 문제로 세상에 알려냈지만, 정부는 한사코 네이스 문제를 전교조와 교총, 한교조의 갈등 등 교단의 갈등으로 몰아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5월 12일 권고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교육부장관의 약속은 5월 26일 전교조와 합의로 성사되는 듯했으나, 곧 뒤집어졌다. 그러더니 국무총리, 대통령조차도 네이스를 강행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인권운동사랑방을 제외한 인권단체들은 5월에서나 겨우 네이스 반대 투쟁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5월 26일 성명서를 발표 하였지만, 그날 교육부와 전교조가 합의하는 것을 보고 인권단체들의 공동행동을 접었다. 그리고 다시 그 합의가 파기되었을 때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네이스 문제가 교단내 갈등이라든지 몇 가지 항목만 삭제하면 시행해도 좋은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인식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절로 단식농성 결행으로 입장이 모아졌다.
6월 18일 인권활동가 200인 선언을 발표하면서 인권단체 활동가 10여명은 명동성당에 주저앉게 되었다. 그렇게 열흘, 이 열흘 동안에 국무총리실에서는 교육정보화위원회를 구성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자연스럽게 단식단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대응 논의가 모아졌다. 열흘의 농성 기간 중에 네 번의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나아가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교육, 학부모, 학생, 시민, 인권단체 등으로 각기 분산적으로 진행되던 활동을 하나의 대오로 모아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교육정보화위원회에 대한 문제제기, 공동대책위원회 출범이라는 조그만 성과를 내고 우리는 장대비가 내리는 6월 27일 단식농성을 접었다.
지금 이 글을 쓰자니 함께 단식농성을 했던 인권활동가들이 떠오른다. 단장 역할을 하다가 단식 8일째 국무총리실 항의방문 때 쓰러졌던 송원찬(다산인권센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다가도 끈질기게 버텨냈던 김지연(일명 레이, 평화인권연대), 군말 없이 단식농성단의 문건을 집필하며 각종 회의를 주도했던 오병일(진보네트워크센터), 티가 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김병태(안산노동인권센터) 등은 나와 함께 상시 단식자로 결합했다. 그 외에도 3일 단식자, 1일 단식자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주었다. 특히 민가협 어머니들은 우리가 걱정되어 매일처럼 농성장을 찾아주셨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활동가들도 릴레이 단식 농성으로 결합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인권활동가들도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1일 단식에 참여했다. 많은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의지가 열흘의 노상단식농성을 지켜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늘 이런 일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지원단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없다면 단식농성 대오는 유지되지 힘들다. 각종 선전물의 작성과 제작, 소식지의 작성과 제작, 각 단체에 대한 연락, 언론사 홍보 등 각종 궂은 일은 이들의 몫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허혜영, 진보네트워크의 이은희, 평화인권연대의 손상열, 다산인권센터의 정상용, 천주교인권위원회의 허영신 등의 인권활동가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의 단식농성을 잊지 않았던 많은 단체들은 지난 7월 8일 「네이스 반대와 정보인권 수호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제 네이스 관련한 일은 인권단체에서 이 공대위로 넘어갔다. 이 공대위는 네이스 개인정보 영역 폐기, 전자정부의 반인권성 폭로 등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나는 이 공대위 활동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에 맞는 새로운 정보인권 기준이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대통령 이하 모든 관료들에게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개인의 정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유출하고 있는 시민들이 각성해 주길 바란다. 정말 ‘빅 브라더’가 네이스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배가 무척이나 고팠던 어느 날 성당 들머리에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하늘에는 도시의 불빛 사이로도 선명하게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함께 누워 잠든 인권활동가들을 보면서 내 가슴에도 별 하나를 간직하게 되었다.